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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통한 대리만족

by 세아


어느 날 버려진 스케이트 보드 앞에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는 메모가 붙은 사진과 함께 가져가면 안 되냐는 큰 아이의 카톡이 같이 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본 적도 없는 아이여서 안된다 답장을 보낸 뒤 아이가 집에 온 후 물어봤다.

"그건 가져와서 어떻게 하려고 가져온다 한 거야?"

"내 친구 형도 보드 타고 다니는데 나도 타보고 싶어서요"


나도 어릴 적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사실 어릴 때는 스케이트보드뿐만 아니라 배워보고 싶었던 게 많았다. 가장 처음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건 피아노였다. 아주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같이 언니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준 적이 있다. 3층에 있던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준 그날은 봄이었는지 학원 복도는 햇빛이 들어와 따뜻했다. 복도 창문으로 보이는 뒷마당의 버들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언니들의 피아노소리가 참 좋아 집에 가는 길에 나도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너도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라며 나를 쳐다본 후 말이 없던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답 없는 엄마의 모습에 어렸음에도 '안되는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아니었을 거다. 그 후로는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한테 말하지 못했다.


롤러스케이트, 기타, 합기도 등 배워보고 싶은 게 끝도 없었지만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힘이 닿는 한에서 다 배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어린이날 선물로 언니가 아이들 선물을 사준다 하여 큰 아이는 스케이트보드를 사달라 하였다. 초보자용으로 골랐는데 4만 원 돈 하였다. 유튜브로 설명을 들으며 집안에서 연습하는 아이를 보며 강습 몇 번은 받아보게 해야겠다 싶었다. 찾아보니 집에서 몇 정거장 가면 스케이트보드 강습을 하는 곳이 있었고 비용이 생각보다 꽤 나갔다.

'와 배보다 배꼽이 크네'

그래도 스케이트보드가 배우지 않고 타기엔 너무 위험하여 체험 한 번 후 4회권을 끊어주었다. 아이는 너무 재밌어하며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데로 잘 따라 하였다. 영상으로만 배웠으면 정확히 알지 못했을 텐데 수업 등록해 주길 잘했다 싶었다. 같이 체험해 본 둘째는 아직 흥미가 없는지 더 배우고 싶지 않아 했다.

'아이고 가뜩이나 비싼데 다행이네' 싶었다.


큰 아이가 공원에 나가 타는 모습을 보며 엄마도 타보고 싶다 하니 아이가 열심히 알려준다. 큰애가 타는 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탈 수 있겠다 싶어 보드 위에 겁 없이 올라가 봤지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창피함은 둘째치고 엉덩이가 얼얼한 것이 배우려면 엉덩이보호대가 필요하겠다 싶을 만큼 아팠다.


아직은 나도 배우고 싶은걸 마음껏 배울 형편은 안되지만 아이들이라도 배우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 해야겠다. 아이가 나를 가르쳐 줄 만큼 뛰어나게 잘하게 된다면 더할 나이 없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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