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즐기면 영어가 늘까?(6)

외국인 앞에서도 자존감 지키기 연습

by 윤슬

"영어에 Be you 라는 게 있어. ‘네 자신이 되어라’는 말인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너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말하지 싫을 때는 말하지 마. 상황의 템포를 네가 가지고 가."

끄덕끄덕.

“어쩌면 네가 말하기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영어 말하기가 어려운 한 이유일 수도 있어.”

격한 공감에 다시금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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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영준

지난 시간에 너와 나눈 대화는 내 영어 인생에서 한 이정표가 될 만한 말이었어.


나의 영어 말하기가 잘 늘지 않았던 게, 듣기(Listening)가 부족해서라거나, 단어를 잘 몰라서였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되지 못하고 쩔쩔매는 데서 오는 말하기 기피(?) 때문이었다는 거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


네 말처럼 여태껏 나는, 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낄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만 초점이 있었어. 정작 당사자인 나는 말을 하고 싶은지, 말하기 싫은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


나’와 ‘남’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데, ‘남’만 고려하며 대화했어. 그러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더라. 외국인을 만나고 왔을 때는 더 했어.



‘저 친구가 지금 어색해하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이 어색함이 풀릴까?’


하며 맥락에 맞지 않게 웃기도 했지.


‘저 친구가 내가 영어로 말을 되받아치지 못해 불편해하는 건 아닐까?’


하며 아무 말이다 냅다 던지기도 했지.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찬 채, 불안한 내면은 내버려두며 웃는 내 마음은 바짝바짝 마르고 조바심이 났어.


그런데 네가 나에게 ‘Be you'라는 힌트를 주었고, 나는 그게 영어를 공부할 내가 넘어야 하는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 나이는 서른 둘. 이제는 정면 돌파를 하고 싶었어.


우리의 포항 여행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 앞에서도 내 자존감을 지키며 내 템포로 말하는 연습을 한다는 점에서 말이야.


Zoe와 내가 약속 장소에서 먼저 만나, 너와 선희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Zoe와 역시 어색하고 불편했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는 오롯이 내가 되고 싶었어. 말 저 말 하지 않고 싶었어.


그런 다짐만으로도 나에게서 풍겨 나오는 에너지가 좀 더 안정적이었을까?

다행히 원어민 교사인 Zoe가 먼저 학교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해 주고, 윈드서핑 이야기, Outlier라는 책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풀어주었어.


그러다보니 너와 선희 언니가 차를 타고 짠 도착했지.


여기서 너에게 고마운 게 있어. 포항 가기 전날 나에게 연락을 주어서,


‘네가 불편할 것 같은데 내일 Zoe랑 뒷자리에 함께 앉아볼래? 어떻게 할래?’

하면서 물어봐 줬잖아.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라 네가 먼저 알아주니 정말 고맙더라. 덕분에 나도 더 용기를 내서 Zoe랑 같이 앉겠다는 선택을 했어.


차에 오른 뒤, Zoe와의 공통된 화젯거리는 10분도 안 되어 다 떨어지고, Zoe는 왼쪽 창밖을 보며 잠들더라. (잠든 척 한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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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뻘쭘하게 오른쪽 창밖 쪽을 보며 앉아 있었지. 평소 같으면 ‘내가 지루하게 해서 Zoe가 자나봐.’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번엔 굳이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더라. Zoe의 행동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짓은 이제 그만하고 싶더라.


그래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했어. 카톡도 하고, 창 밖도 보고, 너랑 이야기도 하고. 남에게 신경 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어.



포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모리국수도 먹고, 찐빵도 먹고, 바다도 걸었지. 가려고 했던 과메기 박물관과 예술관이 코로나로 문을 닫아서, 일본인 가옥거리에 갔었잖아. Zoe가 안 가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Zoe가 몇 달 전 한국인들이랑 이미 구룡포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웃기도 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Zoe다...)


이건 너한테 말 안 했는데, 구룡포에서 마지막으로 들렀던 Cafe Heaven에서 사실 Zoe가 선희 언니에게 팔 두르며 사진 찍는 거 같아서 또 겸연쩍고 자괴감 들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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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Zoe랑 선희 언니는 이미 몇 번 등산도 가고 술자리에서도 어울렸었잖아. 친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설령 Zoe가 나를 불편해했다라도, 뭐 어때. 모든 사람과 다 편할 수는 없는 거니.


영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외국인이랑 절대 친해질 수 없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외국인 신경 덜 쓰고 내 템포로 행동하는 연습을 조금이라도 해서 그런지, '그래서 뭐?'라는 마음이 들어.


앞에 대통령이 있든 외국인이 있든간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게 더 중요한걸.


내가 나를 챙기다보면 단단해진 내 내면을 보고 좋아해주는 외국인도 있겠지. 그리고 그런 친구와는 오래도록 우정을 나누기 좋을 거야.


나는 그렇게 단단해진 내 내면 위에 영어를 차곡차곡 쌓을 생각이야. 지켜봐 줘, 친구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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