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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Oct 30. 2022

'부모'에 관한 사색 -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양귀자의 모순은 도무지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아 접어 버렸다. 자기 자신과 너무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괜히 거부감 생기는 일이 있지 않나. 꼭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속속들이 다 읽혀서. 

  양귀자의 모순에 나오는 진진의 경우가 그랬다. 그의 아버지의 성격,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어머니와 대비되는 이모까지... 

  누가 내 속에 살다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비슷해서 나는 그냥 책을 덮어버렸다.

  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냥 의성으로 내려와서 우리 집에서 5분만 있어도 그게 바로 양귀자의 모순, 현실판이니까.

  딸내미 진진과 손바닥을 마주 대면서 다음에 또 맞대어 보자던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면서, 부인에게는 큰 산처럼, 인생의 숙제와도 같은 남자인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담배도 오랜 기간 태웠다. 그를 욕보이기 싫어 더한 것들은 여기서 밝히진 않기로 한다. 엄마는 아버지만 보면 한숨을 쉬고 부글부글 속을 끓인다는 것만 말해두자. 두 사람을 보면 사랑해서 사는 게 맞는 건지, 살아야 하니까 죽지 못해 사는 건 아닌지 헷갈리기 일쑤다. 동생들은 부모님을 보며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근데 한 명이 대학 가자마자 남친을 만들었다. 그래, 인생은, 모순이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혼란을 줬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에 자라는 나무처럼 나는 자랐다. 기댈 데도 비빌 데도 없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컸다.

  나를 더 헷갈리게 한 건 그럼에도 아버지는 중요한 고비마다 나를 어마어마한 힘으로 밀어부치고 끌어올려줬다는 사실이다.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아버지는, 그 반대의 상황이 되면 불콰해진 얼굴로 술주정인 듯 아닌 듯 너를 제일 사랑한다고 너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분명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해주곤 했다.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는 오늘 마늘짱아찌를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이며, 일주일 동안 혼자서 케이블 전선 정리를 하느라고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나 위로 좀 해줘...' 라는 말 따위를 그는 할 줄 모른다. 대신 '그래도 아버지는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된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제 아버지의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게 들리는 나이 서른 하나다.

  어머니도 모성애가 절절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내가 본 남자 어른들은 자녀가 생기는 순간부터 인생의 초점이 자녀가 됐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남들이 싫어하는 보충수업을 도맡아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남자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여럿 봐왔다. 

  다만 여자의 모성애는 알뜰살뜰한 대화와 관심으로 나타나기에 겉으로 잘 드러난다면 남자의 부성애는 보통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열일하며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표출되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는 곳만 보는 어린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다하고 있는 노고를 잘 알지 못한다.

  다시금 오늘 이야기로 돌아오면, 어버이날이라 나는 이번에도 자석처럼 이끌려서 집에 내려 왔다. 

  자식이 장성해 집을 떠나면 부모는 빈 둥지 증후군이란 걸 겪는다. 새끼가 없는 허전한 둥지를 보며 그들의 삶과 내면은 공허함에 빠진다. 난 아버지가 그 허전함 속에 고양이들을 거두어 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고양이를 돌보듯 어린 나를 돌보았겠거니 생각하면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 한편 지금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나갈 수 있게 돌봐준 그런 부모님을 아버지는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일찍부터 술과 담배를 배웠다 생각하면 슬프다. 나에게 아버지가 하듯 아버지에게도 '널 사랑한다', '널 믿는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고 딸인 나조차도 차마 그렇게 말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다.

  고등학교 때 허영심이었는지 무슨 맘이었는지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것을 아버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랍다. 그런 네가 운명처럼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교사밖에 못 된 것 같다고 미안해 하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많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요즘 나는 전생이 있다면 부모란 존재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자식에게 주기로 맹세하고 태어난 존재들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기의 행복을 반으로 접어서 그 접은 만큼을 자식에게 주기로 서약하고, 살면서 많은 선을 쌓을 테니 부디 그로 인한 복을 내 자식에게 전해 달라고 애원하며 태어난 존재들 같다는 생각을 정말로 많이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착하게 사는 세상의 많은 부모님들이 겪어내는 고통과 불행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들 중 하나로 태어났을 것이 분명한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것이라곤 다만 신이 있다면 부디 그들에게도 내게 주시는 만큼의 복을 나누어 달라고 비는 기도뿐이라는 사실은 이 밤의 나를 몹시도 서글프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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