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물줄기가 교차하는 어느 작은 산골마을에서
"그 집은 100년도 더 된 집일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쭉 살아오셨던 곳이니까. 그때는 스위스 사람들도 대부분 다 밭 갈고 농사짓고 우유 짜서 치즈 만들고 할 때였으니, 할아버지야말로 이 작은 산간 마을에서 진정한 농가 생활을 하신 거지. 우리 아빠도 어릴 때부터 대학 가기 전까지 계속 여기서 지냈고. 여기 집 뒤편 언덕으로 조금만 올라가 보면 세계 2차 대전 당시 폭격에 대비하려고 지어놓은 지하 벙커도 있어. 대박이지?!"
고벨리家의 역사가 흐르는 이곳은 툰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제네바를 위시한 프랑스권 스위스 도시들이 포진해 있는 레만 호수(Lac Léman)로 가는 길목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산골마을 츠바이짐멘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좀 일본말 같기도 하다만, 이 이름을 독일어로 해석하면 '두 개(zwei)의 시멘(simmen) 물줄기'라는 뜻으로 이 지역을 관통하는 시메(Simme) 강의 두 지류가 만나는 지점임을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인구 3천 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지만, 베르너 오버란트와 지역과 레만 호수 지역을 잇는 중요한 거점이자 겨울철에는 마을을 둘러싼 산 전체가 스키 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어 늘 활기를 띤다.
특히 츠바이짐멘 옆동네에 있는 그슈타드(Gstaad)라는 마을은 1960년대부터 당대 최고의 셀럽, 유럽의 귀족들, 부호들이 전용기를 타고 날아와 엘레강스한 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곳인데, 오드리 헵번, 데이비드 보위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한나까지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는 인물들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찾아온다고 한다. 10년도 더 전에 툰 지역 UBS 은행에서 업무를 보던 얀이 그슈타드에서 지내는 10대 소년의 출금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당시 하루에 쓸 '용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10억 원 가까이 출금해 가는 걸 보고 제대로 멘붕이 왔다고 한다 (고객님 이거 0 개수가 이게 맞나요..?).
위에서 말했듯, 츠바이짐멘 마을 한 편에는 할아버지, 아니 그보다 더 윗세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가족들의 집이 한 세기 넘게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남인 얀의 아버지 다니엘이 수지와 결혼을 하고 휘니바로 완전히 이사를 가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댁으로 함께 모셔왔는데, 이후에도 할아버지가 츠바이짐멘에 있는 고향집을 처분하지 않으시고 주기적으로 오가시며 꾸준히 집을 가꿔오시다 보니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과 더불어 온 식구가 다 함께 사용하는 별장이 되었다. 가스레인지, 벽난로, 전력 시스템 등 집안 구석구석 할아버지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을뿐더러, 뒤뜰의 작은 언덕에는 할아버지가 정성 들여 관리해 온 미니 양봉장도 있어 매년 봄철이면 할아버지가 짜낸 신선한 꿀이 집안을 달콤하게 채우곤 한다. 흑백사진 속 개구쟁이 소년으로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너머로 당신의 삶과 애정이 잔뜩 녹아있는 곳.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그 오래된 아늑함과 겹겹이 쌓인 가족들의 온기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작년 겨울엔 얀과 츠바이짐멘 집에서 2주간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를 깜짝 찾아오셨다. 결혼 60주년을 맞아 두 분이 자주 가시는 츠바이짐멘의 한 단골 식당에서 소소하게 점심을 드시러 가는데 근처에 있는 우리를 기꺼이 초대해 주신 것. 두 분께 드릴 작은 선물과 축하 카드를 사려고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혼자 시내로 나와 볼일을 보는데, 잡화점에서 나오는 길에 하필 할머니와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할머니: "어머 아가, 너 여기서 뭐 하니?"
나: "엇? 에? 할머니? 왜 벌써 여기 계세요.. 오?"
할머니: "한푸(할아버지 애칭)가 벌집 상태 좀 봐야 한다고 해서 먼저 집에 내려다 주고 나는 시내 구경하고 있었지~ 근데 손에 든 거 그건 다 뭐냐?"
나: "아... 하... ㅎㅎㅎ..."
눈치 백단 할머니 앞에서 별 수 없이 계획을 실토하고 나니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시며 '아이구 이쁜 것' 해주시더라. 별안간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 마음이 찡했다. 할머니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던지 간에 대개 비슷비슷한 것 같다.
팔짱 꼭 끼고 할머니와 마저 시내 구경을 하다가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는 차를 세워둔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할머니가 운전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할머니 운전 잘해요?' 하고 반신반의하며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 이마에 걸친 선글라스를 내려쓴 채 드라이브 모드로 기어를 확 밀어 넣곤 핸들을 휙휙 돌리며 스무스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로 답을 하셨다. 운전대를 잡은 할머니에게서 멋이 철철 흘러넘쳤다. 조수석에 앉아 감동의 물개박수를 몇 분이나 쳐댔는지 모른다.
우리가 츠바이짐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또 다른 반가운 손님, 베르그 가족과 함께 산을 타며 주말을 보내기로 한다. 얀의 죽마고우인 프레드와 얀은 경사가 가파른 산에 스키를 타러, 나와 프레드의 와이프인 릴리는 두 살배기 딸아이 엔야와 함께 좀 더 완만한 설원지대에 스노우 하이킹을 하러 각자 길을 떠났다. 당시 릴리는 둘째를 임신한 지 5개월쯤 되어 배가 상당히 나와있던 상태였는데, 임산부의 몸인걸로도 모자라 첫째 아이를 들쳐업고 몇 시간짜리 트래킹을 하러 아무렇지 않게 나서는 그녀의 기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체력 좋은 스위스 여인들이라지만 릴리는 거의 초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슈퍼우먼 엄마 덕에 첫째 딸 엔야도 일찌감치 대자연을 경험하며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설원 위로 약간은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릴리와 나란히 걸었다. 뽀득뽀득한 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우리. 나의 첫 스위스 친구들 중 한 명인 릴리는, 보통 조금 내성적인 경향이 있는 스위스인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살갑고 적극적인 제스처로 나를 맞아주고 내가 스위스에 있지 않을 때도 꾸준히 나의 안부를 물어오는 등 유독 나를 잘 챙겨줘서 내가 일찌감치 마음을 열게 된 친구다. 비록 얀의 친구의 와이프라는 다리를 건너 알게 된 사이이긴 하지만, 호탕한 성격에 속깊은 마음씨를 지닌 그녀가 이방인인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줬기에 '스위스도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좀 더 빨리 긴장을 풀 수 있었지 않았나 한다. 릴리에게 여러모로 고마운 게 많은 만큼, 앞으로 쑥쑥 커 갈 그녀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이모가 되어야겠다는 (=선물을 많이 사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래된 벽난로 옆에 할아버지가 겨우내 마련해 두신 뗄감이 바구니에 한가득 쌓여있다. 요령껏 나무심지와 장작을 겹쌓아 불을 피우고는,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골 마을의 고요를 바라본다. 소복이 눈 이불을 덮은 나무집들과 들판,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메 강의 물줄기, 밤하늘을 밝히는 쏟아질 듯 무수한 별빛. 창 너머로 내가 마주한 풍경은 왠지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오늘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 다니엘도 오래전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평온을 느꼈겠지. 그 마음이 세대를 건너 인연을 돌아 나에게로 전해진 듯하다. 그렇게 이 공간은,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담담하게 우리의 하루를 품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