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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07. 2024

사랑으로 함께 갈 수 있다 <6번칸>

Compartment No.6

-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세이디 하를라 주연     



칸영화제 수상작을 중심으로 영화감상을 올립니다. 스포가 많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다소 어렵고 마주치기 꺼려지는 주제와 장면들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직면하고 싶었던 마음은 왜일까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영화라면 그래서 더욱더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문제 투성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항상 동반되기 때문에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요? 혼자 보기 아까운 칸의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핀란드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기 위해 온 고고학자 라우라. 문학교수 이리나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다. 암각화(그림이 새겨진 바위)를 보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무르만스크로 가는 기차를 탄다. 6번칸에는 무례한 남자가 타고 있다. 술 마시고 담배 피며 계속 이상한 얘기를 지껄이는 료하라는 남자와 같은 칸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한다. 승무원에게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하지만 빈칸이 없다고 한다.    

 

남자의 인상이 보통 험악한 것이 아니다. 빙퉁그러진 남자는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쳐다보며 호기심을 거두지 않는다. 창밖으로는 살풍경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것저것 핀란드어로 뭐라고 하는지 물어본다. ‘사랑해’는 뭐냐고 물어본다. 여자는 ‘하이스타 비투’라고 알려준다. 핀란드어로 ‘엿먹어’라는 말이다. 여자는 남자 때문에 피곤한 여행을 하고 있으니 ‘사랑해’ 라는 말 대신 ‘엿먹어’라는 뜻의 핀란드어를 알려준 것이다.     


커다란 광산에 일하러 간다는 남자. ‘보트로자부르크’에서 기차가 하루 머문다는 데 나랑 가지 않겠느냐며 여자를 유혹한다. 집요하게 여자에게 같이 가자고 하자 여자도 남자의 차에 탄다. 할머니집에 가서 밤새 술 마시고 음식도 나눈다.      


할머니는 ‘여자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는 작은 동물이 살고 있어. 받아들이고 믿어야 해. 내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현명하지. 엄마,아빠,남편 말 들을 필요 없어. 15살 때 스스로 믿는 법을 깨우쳤지. 43년간 쭉 행복하게 살고 있어. 내면이 시키는 대로 하고있지”     




아침에 다시 기차에 탄 둘은 왠지 모르게 친해져 있다. 그러던 중 표가 없어 곤란에 빠진 핀란드남자를 자신의 칸에 타게 하는 여자.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한 료하.

          

핀란드 남자는 중간역에서 내린다. 한참을 내달린 후 여자는 그 핀란드 남자가 자신의 카메라를 훔쳐 간 것을 알게 된다. 료하가 말한다. “인간은 다 죽어야 해”  

   

선해 보이고 도움까지 받은 남자가 카메라를 가지고 갈 줄이야. 물건도 문제지만 그 카메라 안에는 여자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착역이 가까워지자 축하하기 위해 둘은 식당칸으로 간다. 남자가 자는 모습을 그린 여자가 종이를 내민다. 자기도 그려달라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자 남자는 그런 건 다 쓸데없는 짓이라며 음식도 먹지 않고 식당에서 나가 버린다.   

  

따라 나서는 여자, 6번칸으로 간다. 둘은 진한 키스를 한다. 무르만스크에 도착하고 남자는 일터로, 여자는 호텔로 간다. 여자가 남자의 일터로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메모만 남기고 돌아온다.   

   

다음날 호텔로 찾아온 남자, 암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둘은 차와 운전수를 구해 암각화를 보러 간다. 가는 길은 험난하고 추운 눈길이다. 문제는 배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풍랑이 세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한다. 설득 끝에 장소를 알고 있는 한 사람과 배를 탄다.    

 

여자는 바위 위의 그림을 감상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남자 때문에 보게 된 암각화. 둘은 눈보라 속에서 장난을 치며 사랑을 키운다. 돌아오는 차 안, 운전수는 료하에게서 받은 종이를 건네준다. 종이에는 남자가 그린 여자의 간단한 초상화가 있다. 뒤에는 ‘하이스타 비투’라고 적혀있다. 핀란드어로 ‘엿 먹어’. 남자가 ‘사랑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하이스타 비투’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료하는 무뚝뚝하지만 곡진한 사랑을 써 내려간다. 위험하고 험악한 날씨에 여자가 보고싶어하는 암각화를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수 많은 사람이 안 된다고 거절할 때 료하는 여자를 위해 기어이 동행하고 여자의 계획을 가능하도록 인도해준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믿음직스럽다. 갖고 있는 얼굴의 인상이 무색하리만치 여자에게 순수한 사랑과 정성을 들인다. 여자는 모스크바에 애인을 두고 여행 중 뜻하지 않은 사랑을 만난다. 극 중 대사처럼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예전에 기차로 여행 다닐 때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도 걸고 간식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을 싹 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극동의 러시아 기차 6번째 칸에서 뜻하지 않은 사랑을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구태의연한듯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불안한 출발과 달리 종국에 가서 활짝 피어나는 이들의 사랑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물들인다. 여행만 가면 자리덧으로 힘들어하는 내게 이들의 기차여행은 피곤하지만 한편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환경은 사랑을 키우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둘은 잘 보이기 위해 꾸미거나 치장을 하는 것 없이 서로의 마음을 얻는다. 남자는 이 투박해 보이는 핀란드 여성에게 어떤 매력을 느낀 걸까? 둘의 마음에 동시에 불꽃이 일게 하는 묘한 사건, 사랑. 해석도 안 되고 설명도 안 되는 기적 같은 합일.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의외의 아름다운 선율같은 영화. 6번칸. 제목만큼 수수께끼 같은 사랑 이야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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