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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Mar 29. 2022

아름답지만 낡은 꽃

참전 유공자 아내의 슬픈 계획

 "소장님, 다름이 아니라 나는 뭘 좀 상담하려고 왔어요."

H 어머니는 항상 꽃이 달린 니트 모자를 쓰고 코트와 장갑을 끼고 오시는 시골 멋쟁이 할머니시다. 그날은 어쩐 일로 아침부터 쉬지 않고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민원으로 북적대고 있었고, 요양보호사님이 모시고 오신 치매 어르신께서 화를 내고 있던 참이었다.

"어머니, 너무 죄송한데 혹시 가셨다가 오후에 3시 넘어오실 수 있으세요? 지금은 상담을 하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어서요."

"그래요? 그러면 내가 이따가 세 시 반 버스를 타고 영감을 데리고 올게요."

"네네, 그러세요."

버스를 타신다는 말씀 앞에 뭐라고 더 하신 말씀이 있었지만 하도 정신이 없어서 건성으로 네네, 대답을 했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도 여전히 줄을 잇는 민원인들을 응대하던 중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때 H님이 다시 오셨다. 그제야 세 시 반 버스를 타고 다시 오시겠다던 약속이 생각났다.


 "세 시 반 버스 타고 오신다고 하셨는데 일찍 오셨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서 맞아드리자 헐떡 거리면서 들어오셔서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 숨을 돌리신다.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H님의 얼굴을 울상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바짝 쪼그라든 턱을 당기며 난감하게 웃으시는 어머니는 몹시도 고단해 보였다.

"진료소가 언덕 위에 있어서 올라오시기 숨 차시죠?"

"요기 올라오는 것도 이렇게 숨이 차.....  늙어서 그런 걸 뭐...."

"세 시 반 버스로 오신다더니 일찍 오셨네요?"

"세 시 반 버스로 우리 영감이 올 건데, 나는 미리 소장님하고 상담을 좀 하려고 먼저 걸어왔어요."

"무슨 중요한 일이신가 보다."

어머니는 내게로 바짝 몸을 숙이며 마스크를 벗으신다."

"어머니, 마스크 쓰고 말씀하셔도 저는 아직은 다 잘 들려요. 마스크 쓰셔야 해요."

최근 코로나 확진을 받아 자가격리를 했던 나는 혹시나 아직 남아있는 바이러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조심하는 중이어서 마스크를 벗고 몸을 바짝 붙이는 어머니를 보며 놀랐다.

"그래요? 그래... 내가 답답해서.... 나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영감이 치매 검사를 좀 받았으면 해서 그래요."

"아, 네.... 검사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죠. 최근에 아버님이 이상 증상이라도 보이셨나요?"

"우리 영감이 워낙 나한테는 그렇게 맨날 화를 내고 악을 쓰기는 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더 욕도 하고 악을 쓰고 하니까 내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아버님이 전보다 더 막 대하셔서 어머니가 많이 힘드시군요..."

"말도 말아요. 남 같으면 서러워서 같이 못 산다니까.... 우리 동네 노인들은 다들 치매 검사받고 뇌 약을 받아다 먹는데, 나랑 우리 영감은 검사를 안 해서 그런 혜택을 못 받으니까 지금 검사를 좀 받아 보려고."

"네, 그러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H 어머니를 대기실에 앉혀 놓고 '국가 치매관리 시스템'에 접속을 하여 H 어머니와 그 배우자이신 J 아버님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H 어머니는 인지 선별 검사를 받으신 기록이 없었고, 아버님은 이미 2년 전 인지저하로 판정을 받으신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님은 2년 전에 인지저하가 나와서 한두 번 전화 통화를 하셨을 것 같은데요?"

"난 모르지"

"군 보건소에서 사람이 나왔을 것 같기도 한데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없었어.... 난 몰라요"

이런 경우가 대략 난감하다. 어쨌든 2년 전 아버님에 대해 2차 검사를 시행한 직원은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없으니 현재 담당 직원과 통화를 하여 일단 재검사를 하기로 계획을 세워 본다.  H 어머니 먼저 인지 선별 검사와 우울 검사를 시행하였다. 16점 기준점에 21점. 어머니는 각 연령과 학력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점에 비해 아직은 인지기능이 좋으시다.

"어머니, 이 정도면 대학교 가셔도 되시겠어요"

나의 농담에 어머니는 '너무나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데도 치매가 아니라고?' 하시면서도 싫지는 않으신 표정이다. 이렇게 스마트하시니 자존감도 높으시고 남다르게 반듯한 옷차림과 예의 바른 말씨를 지니셨던 어머니이지만 얼굴에 가득한 수심이 마치도 아름답지만 곧 떨어질 꽃처럼 느껴진다.  


 정확히 세 시 반 버스에서 내리신 듯 겨울 점퍼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버님이 '아이고 죽겠다!' 하시며 들어오신다. 다리가 많이 아프신 모양이다. 아버님이 진료실로 들어와 앉으시자 어머니가 옆에 와서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라게 큰 소리로,

"치매 검사 소장님이 해 줄 거야, 잘 받아봐요!"

하지만 아버님은 기분이 몹시 나쁜 표정으로 버럭 소리르 지르신다.

"누가 귀가 먹었나!! 왜 이렇게 악을 써!"

"당신이 잘 못 들으니까 크게 말해야지!"

"그렇게 혼자 웅얼거리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크게만 말하면 다야!!??"

"그럼 좀 잘 듣던가!"

어머니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실룩거리고 있었고, 아버님의 어깨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어머니, 제가 잘해볼게요. 잠깐 나가 계실까요?"

"알았어요....."

H 어머니가 나가시면서 두 분의 짧고도 격렬한 싸움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아버님은 혼자서 뭔가 중얼거리시며 나가는 어머니의 등을 노려 보고 계셨다.


 H 어머니의 배우자인 J아버님은 모자로 가려진 눈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님, 눈도 잘 안 보이시죠?"

"응? 잘 못 들어...... 안 들려서...."

아마도 백내장 때문인 듯 각막이 많이 혼탁하셔서 눈이 어두우실 것 같기도 한데 눈보다는 귀가 더 문제였다. 전혀 못 들으셨다. 이 정도면 인지 선별 검사도 거의 가능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수 없이 아크릴 가림막 사이에서 투명 마스크를 쓰고 아주 천천히 검사를 시작했다. 문득 입고 계신 패딩 점퍼 깃에 단 국가 유공자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국가 유공자 자격을 가지신 분들은 치매 관리에도 약간의 혜택이 주어진다.

"아버님, 국가 유공자신가 봐요."

"응?"

"참전 용사"

"아~6.25 참전했어. 해병대. 전쟁 나갔었어."

"아이고~ 훌륭하신 아버님이셨네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됐어요."

"응, 그래"

아버님의 표정이 금세 환해진다. 나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발음하려고 애쓰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조로 천천히 말을 하느라 나는 진땀이 나고 아버님은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며 내게 집중해 주셨다. 듣고 따라 하는 문제는 전혀 하지 못하셔도 생각해서 푸는 문제는 척척 해내시는 아버님은 1분 안에 채소와 과일 이름을 나열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거침없이 술술 이름을 생각해 내셨다. 매일 아내에게 악을 쓰고 화를 내는 분이지만 사실은 유쾌하기까지 하셨다. 나의 농담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J아버님은 단지 청각에 문제가 있어서 듣지 못하시니, 첫 문제에서 내게 그러신 것처럼 무조건 '몰라, 몰라'하고 대답을 하셨을 것이다. 검사를 시행한 직원도 많이 난감했겠지만 보통의 시골 89세 어르신들에 비해 오히려 영리하시고 인지가 매우 밝으신 분이셨다. 이런 분이 무슨 치매란 말인가.


 오랜 진료소 근무로 터득한 것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가 안 들리시는 분에게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귀가 먹어 본 적이 없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 중에는 오히려 귀가 예민하신 분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 너무 큰소리로 말하면 오히려 귀가 아프거나 더 안 들리는 경우가 많다. 귀가 안 들리시는 분들에게는 적정한 높이로 말하되 입술 모양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소통에 효과적일 때가 많다. J아버님도 그랬다.   


 검사가 끝나고 아버님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신 H 어머니께서는 영감님이 치매가 아니라고 말하는 내게 화를 내셨다. 어서 치매라도 걸렸다고 하고 등급을 받아 요양원으로 보내고 싶은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시라는 나의 말에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내가 너무 힘들어, 나도 늙어서 안 아픈 데가 없는데 저렇게 악만 쓰고 나를 못 살게 구니 내가 더 힘들어. 치매 진단을 미리 받아 놓았다가 혹시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됐다, 하면 어디 요양원을 보내던지 해야 내가 살지.. 근데 저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데도 치매가 아니라고?"

어머니의 낙심 앞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등급 없이도 요양원 입소는 가능하다. 그러나 J아버님은 절대 요양원으로 가실 분이 아니셨다. 자긍심이 있으시고 가부장적인 고집이 있으신 분들에게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분들은 '집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H 어머니의 슬픈 계획은 좌절되었다. 귀와 눈이 어두운, 그래서 화만 내는 난폭한 남편을 봉양하느라 고 지친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당장 영감님을 요양원으로 보내고 그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팠다.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용감한 참전 용사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는 듯 보이니, 활달 명랑하고 긍정적인 인지를 지니신 H 어머니의 자긍심도 하루하루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활짝 피어 아름답지만 수분이 마른 꽃과도 같아 보였다. 부디 아름답게 그저 썩지 않고 그 아름다운 채로 어느 좋은 날 아름다운 채로 하루아침에 고통 없이 뚝, 떨어지게 되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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