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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n 17. 2022

올해가 마지막

시골 어머니의 몰래 사랑

 Y어머니를 담당하시는 요양보호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Y어머니를 모시고 내소 하시려는데 출장을 갔나 확인하는 전화였다.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교동도 파견근무도 종료되었다. 신구자가 발령을 받아 자리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제가 모레 방문하는 날인데 그때 뵈면 안 될까요? 거동이 어려우신데 낙상이라도 하면 걱정이네요."

"꼭 거길 가야 하는 이유가 있으시답니다."

"급하신 일인가 보다....."

"급하지, 성격이 아주 급하시지"

요양보호사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요양보호사님이 자차로 Y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차에서 내리는 Y어머니는 마치 나무늘보 같다. 아주 천천히 가까스로 내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오는 요양보호사님의 한 손에 자루가 들려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힌 Y어머니는, 그래도 언제나 한결같이 밝고 경쾌하시다. 대기 의자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는 어머니가 자루를 열어 내게 내민다. 곱게 야무지게 엮은 마늘이다. 한 접은 될 듯싶다. 놀라서 내가 손사래를 치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신다. 

"올해가 마지막이야"


 올해는 유난히 일교차가 크고 비가 오지 않았다. 지난 초겨울 심어놓은 마늘이며 양파들이 도통 자라질 못했다. 냉해를 입고 가뭄에 시달린 농산물들은 덩달아 몸값이 올랐다. 그리 굵지도 않은 양파며 마늘이 귀하니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어머니의 마늘은 제법 실했다. 

"어머니, 저 이거 못 받아요. 마늘 값이 너무 비싸서 김영란법에 어긋나서 큰일 나요"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받아요. 내가 소장님 고맙고 이뻐서 주는 거야."

"저 이거 진짜 못 받아요. 어머니가 네 발로 기어 다니면서 농사지은 귀한 걸 어떻게 거저 받아먹어요?"

"올해가 마지막이야. 나 이제 농사 못 지어요. 애들이 밭도 다 팔아버린다고 난리야. 나도 생각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내일 토요일이라고 애들이 마늘 캐로 온다잖아. 그래서 어제 내가 더러 좀 캤어. 애들이 캐면 내 맘대로 누구 줘 보질 못해서 몰래 몇 고랑 먼저 캤어요."

눈물이 핑 돌고 할 말이 없다.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께서 손짓을 하신다. 

"나는 소장님이 진짜로 이뻐. 먼저 소장들도 다 잘하긴 했는데 소장님은 참 성격도 좋고 나한테 자식처럼 하잖아. 내가 마음대로 몸을 놀리면 더 해주고 싶지. 이것도 올해가 마지막이야. 어서 저기다 갖다 둬요. 매달아놔도 되고 다 까서 찧어 놓고 먹어도 되고..... 맘대로 먹어도 돼요. 단단해서 오래 두고 먹어도 될 거야. 낼모레 소장님이 방문 온다는데 그때는 애들이 나 먹을 것만 남기고 죄다 갖고 가서 줄 게 없잖아. 그래서 미리 온 거야. 내가 주고파서 애들 몰래 주려고... 누구한테 내가 이거 줬다고 말하지 말아요."


 요양보호사님 손을 잡고 진료소를 나서는 어머니는 허리가 잔뜩 구부러지고 골반까지 심하게 뒤틀려 있다. 육신의 통증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저 몸으로 밭을 일구고 가꾸고 수확하실까, 생각하면 불가사의하여 믿어지지 않고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딱하다. 그래도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시는 Y어머니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본다. 시골 어머니들은 혼자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으시다. 오직 가족들이 먼저였고 그다음은 마음을 나누는 일에 기뻐하고 자신은 가장 나중이다.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지독하게도 이타적인 사랑은 가난으로 강퍅할 수 있는 세상에 언제나 조금씩은 열려 있는 쪽문 같다. 그 문으로 바람도 불어 통하고 사람들하고 나눌 것이 흐른다. 이분들 모두가 세상을 버리고 나면 시골의 풍경도 바람도 햇살도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때는 나도 시골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 Y어머니가 주셨던 마늘을 까던 추억을 기분 좋게 되새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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