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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Aug 22. 2019

#2 휴남동 서점이 문을 열었다

소설 연재

영주는 카운터 옆 책상에 앉아 메일을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들어온 주문 물량이 얼마인지만 확인하려는 것이다. 확인한 후에는 어젯밤에 적어 놓고 간 메모를 읽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메모해 놓는 습관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였다. 예전엔 하루를 완벽히 통제하고 싶어 메모를 했다면, 지금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메모를 한다.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읽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서점을 열고 처음 몇 개월 동안엔 메모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정지된 시간이었다. 겨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서점을 열기 전까지는 뭐에 홀린 듯 기운이 뻗쳤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영주는 서점을 열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다른 모든 생각을 쫓아냈다. 다행히 영주는 집중할 대상이 있으면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목표가 그녀를 뛰게 했다. 장소를 정하고, 건물을 찾고, 인테리어를 하고, 책을 입고하는 틈틈이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다.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휴남동 서점이 문을 열었다.


문만 열어 놓았을 뿐 영주는 사실상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점은 마치 아픈 동물처럼 숨을 헐떡이며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서점이 뿜어내는 은은한 분위기가 처음엔 동네 사람들을 끌어들였지만, 이내 발걸음이 줄었다. 몸속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얗게 앉아 있는 영주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마치 영주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는 기분을 느꼈다. 영주는 웃고 있었지만, 아무도 영주의 웃음을 따라 웃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주의 웃음이 꾸민 웃음이 아니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민철 엄마도 그중 하나였다.


“가게 사장이 그러고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오겠어? 책 파는 것도 다 장산데 고상하게 앉아 있기만 해서 어떡해? 돈 버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줄 알아?”


예쁜 얼굴에 화려하게 차려 입길 좋아하는 민철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문화 센터에서 중국어, 드로잉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약속이나 한 듯 서점에 들러 영주의 안색을 살폈다.


“오늘은 좀 괜찮아?”

“저 원래 괜찮아요.”


민철 엄마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영주가 옅은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으이그. 동네에 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다들 얼마나 좋아했는 줄 알아? 그런데 웬 병자 같은 아가씨가 어디 나사 하나 풀어진 것마냥 축 늘어져 앉아 있으니 어디 쉽게 오겠어?”


민철 엄마는 말을 하며 반짝거리는 가방에서 반짝거리는 지갑을 꺼냈다.  


“제가 나사 하나 풀린 이미지예요? 그것도 좋은데요?”


영주가 지금 자기가 농담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려는 듯 과장해서 활기차게 말하자, 민철 엄마는 쯧쯧 소리를 내는 동시에 피식 웃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나 줘.”


영주는 계산을 하며 이번에는 진지한 척 말을 이었다.


“제가 원래는 너무 완벽한 사람이라 일부러 어리숙해 보이려 그러는 건데, 그게 안 통하는 것 같아요.”


영주의 말에 민철 엄마는 재미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농담 잘하는 사람 좋아하는 거 누가 알려준 거 아니지?”


영주가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쌍꺼풀이 작게 진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야무지게 다물자, 민철 엄마는 재미있는 걸 봤다는 듯 기분 좋게 웃으며 눈을 흘겼다. 영주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민철 엄마가 테이블 바에 몸을 기대고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한없이 몸이 꺼지더라고. 기운도 없고. 민철이 낳고 한동안 병자처럼 살았던 것 같아. 뭐, 병자가 맞긴 했지. 몸 여기저기가 다 아팠으니까. 몸이 아픈 건 이해가 가는데, 마음이 아픈 거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


“커피 나왔어요.”


영주가 커피 뚜껑을 닫으려 하자 민철 엄마는 뚜껑은 필요 없다며 커피 잔에 빨대를 꽂고는 카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영주도 민철 엄마 맞은편에 앉았다.


“병자였는데 병자처럼 굴면 안 되니까 더 힘들었던 거지, 뭐. 아픈 걸 말하지 못하는 게 억울해서 밤마다 울었고. 만약 그때 나도 영주 사장처럼 맥없이 앉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그러면 조금 더 빨리 울음을 그칠 수 있었을 거야. 나 정말 오래 울었어. 울음 날 땐 울어야 해. 마음이 울 땐 울어야 해. 참다 보면 더디게 나.”


영주가 잠자코 듣고만 있자, 민철 엄마는 차가운 커피를 단숨에 빨아들였다.


“말하다 보니 영주 사장이 부럽네. 이런 시간을 갖는 게.”


민철 엄마 말처럼 처음 몇 개월간은 자주 울었다. 눈물이 나면 흐르게 내버려 뒀다. 눈물을 흘리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닦고 손님을 맞았다. 손님들은 영주의 눈물을 모른 체했다.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우는 이유가 있겠지 싶은 표정들이었다. 이유가 있긴 했다. 영주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분간, 아니 어쩌면 평생 영주 곁에서 영주를 울게 할지도 몰랐다.


눈물의 이유는 과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영주는 어느 날 문득 자기가 더는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는 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홀가분했다. 맥없이 앉아 있는 날도 서서히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보다 더 기운이 났다. 하지만 당장 서점 운영을 잘하기 위해 뭔가를 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대신, 열렬히 책을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을 곁에 쌓아두고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골똘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밤낮없이 책을 읽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배고픔도 잊고 눈이 빠져라 책을 읽던 즐거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이 즐거움을 다시 찾는다면, 어쩌면, 영주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중학교 졸업 전까지, 영주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바쁜 부모님은 영주가 조용히 책을 고 있는 것만으로 됐다 싶은 모양이었다. 집에 있는 소설책을 몽땅 다 읽은 후부터는 도서관에 다녔다. 책 읽는 게 재미있었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온 것 같아 마냥 신이 났다.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갑작스레 꿈에서 쫓겨난 아이처럼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속이 상할 필요는 없었다. 책을 펴면, 언제든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니까.


손님 없는 서점에서 책을 읽던 영주는 십 대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젠 책 읽는 것도 쉽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하며 뻑뻑해진 눈을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줬다.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나서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헤어진 친구와 관계를 회복하듯 영주는 온 마음을 다해 책을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두 친구는 떨어질 줄 몰랐다. 소원하던 관계가 찰싹 달라붙더니 둘 사이는 금방 회복됐다. 책은 영주를 받아주었고, 받아주는 것도 모자라 따뜻이 품어주었고, 영주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는 듯 영주를 그 자체로 이해해주었다. 영주는 하루 세 끼 밥을 잘 챙겨 먹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튼튼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들자 비로소 서점의 객관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너무 서점에 무심했던 거 인정.’


서점엔 책이 반도 채워져 있지 않았기에 영주는 부지런히 서점을 채워갔다. 여기저기에서 좋은 책을 수소문했다. 읽은 책엔 그녀만의 감상을 적은 쪽지를 꽂았다. 읽지 않은 책도 비평집, 서평집, 인터넷 서평을 읽어가며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알아두었다. 손님이 영주가 모르는 책에 관해 물었을 땐 나중에라도 그 책을 찾아봤다.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드리려 하기보다 우선 휴남동 서점이 서점의 꼴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그러자 차차 동네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시선도 줄어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서점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올 때마다 서점은 더 아늑해졌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심코 한 번 들어오고 싶은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무엇보다 영주 얼굴이 달라졌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님들을 당황스럽게 하던 영주는 이제 없었다.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일부러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손님 세네 명이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 민철 엄마가 기뻐하며 물었다.


“여길 어떻게 알고 왔데?”

“인스타그램 보고 찾아오시더라고요.”

“영주 사장이 그걸 해?”

“책에 꽂힌 쪽지들이요.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놓거든요.”

“그렇게만 한다고 여기까지 와?”

“이것저것 다 올려요. 아침에 출근하면 아침 인사, 읽고 있는 책이 있으면 책 소개, 가끔은 힘들다고 투정도 하고, 퇴근할 땐 퇴근 인사도 하고요.”

“나는 요즘 사람들을 도통 모르겠어. 그런다고 여기까지 와? 여하튼, 다행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뭘 하고 있긴 했네.”


신경을 쓰지 않을 땐 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일이 끝나지 않았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특히, 서점 일을 하고 있다가 커피 주문이 들어올라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텝이 꼬여 당황하길 여러 날. 영주는 바리스타 공고를 서점 근처 몇 곳에 붙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민준이 왔다. 영주는 민준이 내려준 커피 맛을 보고 그날 바로 공고를 모두 뗐다. 민준은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서점을 연지 1년쯤 되던 때였다.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났다. 민준은 5분 후에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영주는 민준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것이다. 서점을 여는 1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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