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름 Aug 29. 2019

#4 떠나온 사람

소설 연재

서점 오픈 전까지 영주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그녀를 그녀만의 정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게 해 줘서 좋다. 소설 속 인물이 비통해하면 따라 비통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비장하면 영주도 따라 비장해진다. 타인의 정서를 흠뻑 받아들이고 나서 책을 덮으면 이 세상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주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매번 찾는 게 무언지 정확히 알고 첫 페이지를 펼치는 건 아니었다. 수십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찾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될 때도 많았다. 찾는 게 무언지 정확히 아는 로 책을 읽는 경우 또한 있었다. 1년 전부터 영주가 틈틈이 읽어온 소설들은 이렇게 분류할 수 있었다.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며칠일 수도 있고, 평생일 수도 있는 떠남. 각기 다른 모습의 떠남일지라도 모든 떠남은 결국 그들의 인생을 바꾼다.


그때 사람들은 영주에게 말했다.


“너를 이해할 수 없어.”라고.

“넌 왜 너만 생각해.”라고도.


영주를 나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잊을만하면 환청처럼 들려왔다. 뜸해지는가 싶다가도 한 순간 기억 저 너머에서 목소리들이 달려들었다. 이럴 때마다 영주는 조금이라도 무너졌다. 하지만 더는 무너지기 싫어 영주는 떠나온 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마치 떠나온 사람들에 관한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모으려는 것처럼 굴었다. 영주의 몸 어딘가엔 떠나온 이들이 모여 사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엔 그들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들이 떠나온 이유, 떠날 때의 심정, 떠날 때 필요했던 용기, 떠나고 나서의 생활, 시간이 흐르고 나서의 감정 변화, 그들의 행복과 불행과 기쁨과 슬픔. 영주는 원할 때면 언제든 그 장소로 찾아가 그들 곁에 그녀 자신을 눕혔다. 누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통해 영주를 다독여줬다.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넌 왜 너만 생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로 덮었다. 그녀는 그녀 몸에 담긴 떠나온 이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이제는 이렇게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요 며칠 영주가 읽고 있는 소설은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다. 소설 주인공은 정말이지 철저히 떠나온 여자였다. 여자는 남편과 딸을 떠났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떠났기에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하던 그 남자가 떠나가자 그 남자와 함께 했던 기억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이후 그 어떤 기억도 인생에 덧입히지 않았다. 그 남자를 기억하기 위해 삶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삶을 포기하고 수십 년을 혼자 살아온 그녀는 이제 백 살이 되었다. 어쩌면 아흔 살일지도 모른다.


영주에게 좋은 소설이란 그녀의 기대를 넘어서는 곳까지 그녀를 데려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사랑 때문에 떠난 여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영주의 관심은 ‘떠난 여자’에 방점이 찍혀있었지만, 이제 영주는 ‘사랑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 여자는 남자가 남기고 간 안경을 쓰고 다니다 시력을 망친다. 안경을 쓰는 것이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영주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어떻게 오십 년 전의 사랑, 어쩌면 사십 년 전일 수도 있는 그 사랑을 추억하며 그 긴 시간을 홀로 보낼 수 있었을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 남자가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을지 생각했다. 영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영주는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선택한 삶의 형태는 강렬했고, 그것을 이뤄내는 방식은 치열했다.


영주는 책에서 고개를 들어 인생에서 놓치면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여자의 말을 곱씹어봤다. 인생에서 놓치면 가장 아쉬운 것은 정말 사랑일까. 사랑뿐일까. 사랑은 정말 그렇게나 위대한 걸까. 영주는 사랑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랑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누군가가 사랑하고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주는 그녀 자신이라면 사랑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주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민준은 커피잔을 행주로 닦고 있었다. 알람을 맞춰놓은 시계가 1시를 알리며 울리자 민준은 행주를 제자리에 놓은 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패를 OPEN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민준이 움직이는 소리에 영주도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영주는 문을 닫고 걸어오는 민준에게 사랑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민준이 어떻게 대답할지 예상이 됐다.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결국은 "글쎄요."라고 대답하겠지. 영주는 민준이 멈칫거리는 순간에 한 생각을 말해달라는 것이지만, 민준은 자기 생각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문패를 바꾸고 돌아온 민준은 행주를 들고 이미 닦은 컵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그런 민준을 바라보며 영주는 그에게 묻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뿐이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 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히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영주는 여전히 컵을 닦고 있는 민준에게 말했다.


“민준 씨, 오늘도 수고해요.”

이전 03화 #3 다시 아르바이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