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름 Sep 16. 2019

#5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소설 연재

서점을 열기 전, 영주는 본인이 서점 대표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점 대표 역할을 잘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서점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에겐 서점 대표가 되기엔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님이 “어떤 책이 좋아요?”, “어떤 책이 재미있어요?” 질문할 때 제대로 답도 못해주는 어리바리한 대표. 영주는 어느 날 사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손님에게 엉뚱한 책을 추천한 적도 있다.


“전 J.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혹시, 이 책 읽으셨나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전 5번도 넘게 읽은 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에요. 아…,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재미를 말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저도 모르게 킥킥 웃게 되거나, 다음에 전개될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현기증이 나는 그런 재미요. 이 책엔 그런 재미는 없는데요. 하지만, 뭐랄까, 이 책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를 뛰어넘는 재미가… 있거든요. 이 책에는... 뚜렷한 사건, 사고가 없어요. 그냥 한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는데 그것도 며칠뿐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이… 재미있더라고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손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와 지연은 괜히 긴장이 바짝 됐다.


“아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 관해서요. 학교, 선생님, 친구, 부모님에 관한 생각...”

“그런데, 그 책이 저한테도 재미있을까요?”


손님이 표정을 풀지 않고 묻는 말에, 영주는 말문이 콱 막혔다. 그러게, 이 손님에게도 이 책이 재미있을까? 나는 왜 무턱대고 이 책을 추천한 거지? 당황한 표정을 짓는 영주에게 손님은 추천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이 책 저 책 들춰보다가 결국 역사서 <유라시아 견문>을 사갔다. 이 분, 역사책을 좋아하시는구나. 영주는 그날 그 손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기억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괜한 걸 물었어요.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른데 말이죠.”


손님이 서점 대표에게 책을 추천해달랬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다니. 손님에게 적절한 책을 추천하지 못한 대표가 손님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데. 서점 대표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무작정 손님에게 들이미는 건 옳지 않다,라고 영주는 생각했다. 앞으론 서점 대표로서 옳은 행동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주는 서점 일을 하는 틈틈이 생각을 정리했다.  


- 객관적인 시선.


객관적인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자. 내가 ‘좋아하는 책’이 아닌 손님에게 ‘좋을 책’을 추천하려면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 질문.


책 제목을 말하기 전에 먼저 손님에게 물어보자. ‘최근에 어떤 책을 읽고 재미있으셨나요?’,’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요?’,’평소에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는데요?’,’ 읽고 나서 이건 정말 별로라고 생각한 책은 뭐죠?’, ‘요즘에 주로 하는 생각은?’, ‘좋아하는 작가는?’.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생각해 놓아도 머리가 새하얘지는 상황은 찾아왔다.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요청을 받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슴이 뻥 뚫리는 책 좀 추천해줘.”


민철 엄마가 오늘은 문화 센터에 갈 기운도 없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책이라. 이 단서만으론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고 영주가 준비해둔 질문을 마구잡이로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물었다.


“가슴이 답답하세요?”

“며칠 계속 그러네. 인절미가 목까지 가득 찬 것 같아.”

“무슨 일 있으세요?”


영주의 질문에 민철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반 이상 들이켜도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민철이 때문에.”


가족 문제다. 영주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됐다. 언젠가 작가들에게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작가라면 내 마음을 철석같이 알아줄 것 같아서 사람들은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서점 대표에게도 비교적 쉽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점 대표쯤 되면 사람 마음에 정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민철이가 왜요?”


영주는 언젠가 봤던 민철의 얼굴을 떠올렸다. 길쭉하게 마른 훈남 고등학생이었다. 엄마와 똑 닮은 하얀 얼굴로 말갛게 웃던 모습이 순했다.


“민철이가… 사는 게 재미없데.”

"사는 게요?”

“응.”

“왜요?”

“나도 모르지. 애는 그냥 말한 것 같은데, 그날 이후로 내 마음이…너무 아프네. 아무것도 할 마음이 안 나.”


민철 엄마 말에 따르면 민철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공부도 재미없고, 게임도 재미없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없다고 했단다. 그렇다고 이 세 가지에 아예 담을 쌓고 사는 것도 아니다. 시험 때면 공부도 하고, 심심할 땐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민철의 기본 태도는 ‘심드렁’.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와 침대에 누워서는 인터넷을 하다가 잠만 잔단다. 민철은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았다. 열여덟 나이에.   


“이럴 때 읽을만한 책 없을까?”


민철 엄마가 얼음 사이사이에 고여 있는 커피를 빨아 마시며 물었다.


민철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여럿 떠올랐다. 무기력증에 빠졌거나 자기만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주인공들이야 소설에 천지다. 하지만 무기력증에 걸린 자식을 둔 엄마에겐 어떤 책을 추천해야 할까. 영주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제목도 떠오르지 않았고, 자식 키우는 방법을 다룬 책도 읽어본 적 없다. 영주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 민철 엄마에게 추천해 줄 책이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 서점이 영주라는 한계 때문에 편협한 공간이 된 것만 같아서였다. 영주의 취향, 영주의 관심사, 영주의 독서력에만 맞춰진 공간. 이런 작은 공간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영주는 민철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민철 어머니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책이 생각이 안 나요.”

“그래? 그럴 수 있지.”

“… 방금 떠오른 소설이 하나 있긴 한데요. 그런데 이 소설은 모녀 관계를 다룬 소설이라서요. <에이미와 이저벨>이라는 책이에요. 엄마와 딸이 같이 사는데,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동시에 끔찍이 미워도 하는.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서 서로를 다 이해하고 맞춰주기만 할 순 없잖아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부모 자식도 결국은 어떤 의미에서든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민철 엄마는 영주의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내용 같다고 했다. 사가겠다며 책을 가져다 달래서 혹시 모르니 그냥 빌려주겠다고 하자 아니라고 했다. 책을 들고나가는 민철 엄마를 보며 영주는 책의 효능에 관해 생각해봤다. 한 사람의 꽉 막힌 가슴을 한 번에 뻥 뚫어줄 책이 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한 권의 책이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민철 엄마가 책을 사 가고 열흘쯤 지나서였다. 그녀는 이 말을 하러 잠깐 들렀다고 했다.


“나 빨리 가봐야 해. 그 책 재미있었다고 말하려고 왔어.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울 엄마랑 나 생각나서. 우리 엄청 싸웠거든. 에이미와 이저벨처럼 그렇게 숨 막히게 싸운 건 아니지만.”


민철 엄마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살짝 벌게진 눈으로 말을 계속 이었다.


“마지막이 특히 좋더라. 엄마가 딸 이름을 계속 부를 때. 나 거기선 펑펑 울었어. 나도 나중에 민철이를 이렇게 그리워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민철이가 언제까지 품 안의 자식일 수 있겠어. 나도 이제 걔를 좀 놔줘야 할까 봐. 영주 사장, 정말 고마워. 다음에도 또 좋은 책 추천해줘. 그럼 간다.”


영주가 망설이며 추천한 책을 민철 엄마는 최초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가슴이 뻥 뚫리지는 않았으나 덕분에 엄마를 추억할 수 있었고 아들과의 관계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거였다. 결과가 이러하면 영주가 제대로 추천한 게 맞는 걸까. 책을 펼쳐 든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더라도 그 책이 좋은 책이기만 하다면 독자는 그 책을 읽은 경험을 기쁘게 향유하게 되는 걸까.


좋은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인 걸까.


그럴지도 몰랐다. 영주가 추천해준 책이 비록 손님 취향엔 맞지 않더라도 손님이 ‘그래도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역사서를 좋아하는 성인 남자에게 세상에서  유명한 반사회적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추천하면 그 손님은 그 책을 거들떠도 안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손님이 소설을 읽고 싶을 때, 또는 딸을, 아들을 이해하고 싶을 때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꺼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꺼내 읽은 책을, 그 역시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타이밍이란 것이 존재하니까.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개인의 입장에선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주는 개인을 넘어 생각해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 삶에 관해 말하는 책. 그냥 말하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진솔하게 말하는 책.


영주는 민철 엄마의 벌게진 눈을 떠올리며 다시 답을 해봤다.


-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이전 04화 #4 떠나온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