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어른이

이번 생에 철들기는 글렀다!!

by 숲지기 마야

'내일 당장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 것 같아?'


미국 생활 10년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 집에 머물렀다.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자존심이 구겨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동생이 결혼 전 썼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울증과 무력함이 몸과 마음을 휘두르게 내버려 두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짜증과 스트레스가 늘어갔다. 평생을 부지런히 몸을 쓰며 밥벌이를 해 오신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팔다리 멀쩡한 딸이 돈 벌러 나가지 않고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못 마땅하셨을 테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미안함보다는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달라는 무언의 저항을 했다. 엄마와 나의 팽팽한 신경전은 매일 위태롭게 지속되었다.


나는 실패자였다.

나의 실패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나는 분명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 내 모습은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머릿속에서는 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삶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보니 마침내 삶의 끝,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는 '죽고 싶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몇 번 있었다. 두 번의 교통사고가 그랬고,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가 그랬다. 하지만 그때의 '죽음'은 선택이 아닌 불의의 사고로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스스로 생명을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로 죽는다면 진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한 가지 못다 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일 당장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될까?'


만약 내가 정말로 죽음을 선택한다면 의식이 꺼지기 전 마지막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후회로 남을 일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질문을 던지고 나서 대답을 기다렸다.


가고 싶지만 가보지 못한 여행지가 많았다. 경험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명품백, 누려보지 못한 사치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마치 카드놀이를 할 때 내게 펼쳐질 카드를 기다리듯 내 대답을 기다려보았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사라지고 난 뒤 마침내 내 대답이 적힌 페이지가 펼쳐졌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게 가장 후회가 될 것 같아.'


뜻밖이었다.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예상 밖의 대답이 적힌 페이지를 마음의 눈으로 듣고 읽으면서 그 이유를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머릿속에서 영화나 소설 한 편씩 지어내어 쌓아두고 있었다. 소설을 써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으나 늘 포기했었다. 언젠가 나이가 더 들어 여유가 생기면 그때 도전해 보자며 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고 있던 꿈이었다.


그런데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되는 일이 무엇일까 떠올렸을 때 마음속 진심이 내게 답을 주었다. 죽음을 떠올리고 얻은 대답이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후회로 남겨둔 채 죽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세상에 꺼내어 놓기 위해 한 몸처럼 붙어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나의 꿈이 내 몸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사춘기 때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꿈이었지만 연극영화과 진학을 반대한 부모님의 뜻에 부딪혀 꿈을 접었다. 그 뒤에도 도전해 볼 수는 기회는 있었지만 먹고사는 게 늘 먼저였다. 꿈은 꿈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꿈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꿈을 잊은 채 20여 년을 살아왔다.


시간은 흘렀지만 마치 꿈을 포기했던 사춘기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는 미성년자라 부모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인생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 꿈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10대 때는 시간이 무한할 것만 같았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덧 마흔 살이 넘어 있었다. 이제는 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과 시간은 빨리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곧 50, 60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꿈에 도전해야 했다.




그날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만들었고,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공동저서를 출간했고, 개인저서를 쓰고 있다. 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지만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그 꿈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건져 올린 단 하나의 꿈이었다. 아니, 나를 살려준 동아줄이었다. 생명을 구해주었기에 글쓰기는 나의 꿈이자 생명이다.


먼 훗날 어느 날 진짜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

'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다 풀어놓았어. 이제 눈을 감아도 될 것 같아.'라고 떠올리며 눈을 감고 싶다.


그때까지 나는 꿈을 좇는 어른이로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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