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
캄캄한 무대 위에 자신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고 온전히 세상에 혼자인 듯한 느낌. 그런데 이 느낌은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고 완벽한 주인공이 된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고2 때 처음으로 연극 공연을 했던 때가 그랬다.
고등학교 연합 불교 동아리에서 연말 행사로 연극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전혀 뜻밖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이 있었다. 우리가 할 연극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고 나는 주인공 한병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학생이었지만 그때 당시 쇼트커트 스타일이라 언뜻 보면 곱게 생긴 남학생으로 보였다.) 연기를 배우고 병태라는 역할을 소화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꼈다.
드디어 단 한 번뿐인 공연이 시작되었고 객석을 꽉 채운 선후배와 친구들 앞에서 모두 실수 없이 해내고 있었다. 연극은 병태의 독백으로 끝나는데 나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마주한 순간 열심히 외웠던 대사를 말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 우주 어느 공간에 나와 나를 비추는 불빛만 존재하는 기분.
그때 나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나 혼자 내 맘대로 나의 진로를 연극영화과로 정했다. 진로를 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연기학원 오디션을 등록한 것이다. 오디션을 볼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나는 '레디, 액션!'을 했다.
오디션을 보고 며칠이 지났을 때 집으로 합격통보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그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나한테는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고 아빠한테 얘기를 하셨다. 그 날 퇴근하신 아빠는 나를 불러 앉히셨다. 마루에 아빠와 나란히 걸터앉은 나는 잠자코 아빠의 말씀을 들었다.
연극영화과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다, 연예인이 되려면 부모가 뒤를 많이 받쳐 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공부에 신경을 써야지 다른 데 신경을 쓰면 안 된다 등등 아빠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 안 되는 이유를 내게 일러주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우리 집 형편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쉽게 좌절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하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시시하게 나는 나의 첫 번째 꿈을 접었다.
꿈이 꺾이자 공부할 이유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가뜩이나 불만이 많고 삶에 대한 회의가 많았던 사춘기 시절이어서 공부보다는 사색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성적은 떨어지고 말 수는 더욱 줄었다. 그런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빠는 나에게 편지를 써 주셨다. 그때는 아빠의 편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 말씀은 이해하지만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래서 아빠의 편지는 내 서랍 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대학 진학도 뜻대로 안 되어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를 할 때도 나의 방황은 이어졌는데 8월 즈음에 갑작스럽게 아빠가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나의 방황은 급정지를 하게 되었다.
3개월 남짓 한 아빠의 투병 생활 동안 나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았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고 산소 호흡기를 떼고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 합병증으로 인해 온 몸이 퉁퉁 부어 터질 것 같았던 모습이었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 딱 한 번 면회를 갔는데 그때는 의식이 있으셨다. 아빠는 내 손목보다도 더 얇아진 손을 들어 내 손을 꼭 잡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셨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빠의 앙상한 손목이 마음 아파 눈물만 흘렸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 말이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 이후 20대, 30대는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40이 되었고,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인생의 나락을 경험할 때 한국으로 돌아와 나를 추스르면서 엄마 집에 있는 나의 오래된 서랍을 열어보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와 편지, 크리스마스 카드들이 보였다. 유치한 내용들로 가득했지만 어린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이 이랬구나 싶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맞다, 아빠가 나한테 편지를 써 주셨는데.'
'설마 버린 건 아니겠지.'라고 마음 졸이며 지난 추억들을 헤집었다.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 나는 집중해서 아빠의 편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잊고 있었던 아빠의 편지를 발견했다.
아빠의 편지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고 이 소중한 걸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이 참 한심 해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쳐보았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많이 울었다.
나는 아빠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고 그걸 글로 표현했다는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는 가난하고 연세 많은 부모님을 둔 집안의 장남이었다.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성실함으로 평생을 살아오셨다. 아내와 네 남매를 두고 눈을 감았을 때가 아빠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죽음을 예감한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도 아빠가 살다 간 만큼의 인생을 산 게 되는데 나는 여전히 나하나 밖에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셋째 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과 서포트를 받지 못했다고 엄마, 아빠를 원망했다. 남동생만 예뻐하고 해 달라는 거 다 해주는 것 같아 속으로 미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아빠가 없는 20년을 살고 마주하게 된 아빠의 편지에서 나는 내가 오해하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셨고, 내가 건강하고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 주고 계셨던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 못 되길 바라겠는가. 그런데도 어린 마음에 나는 아빠의 사랑과 진심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네 남매 중에서 아빠의 편지를 받고 간직하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래서 언니와 남동생에게도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잘 간직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만 편지를 써 주셨다고 질투 아닌 질투를 했다. 늘 집에서 외톨이 같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로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마음을 닫고 있었고 내가 우리 가족들의 진심을 외면한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사공춘기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때 발견한 아빠의 편지는 나를 지탱하게 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십 대 때와는 또 다른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이제 질풍노도라는 파도를 유유히 즐기는 서퍼가 되었다. 거센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중심을 잡은 채 큰 파도 가르는 서핑 보드 위에 올라서 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나의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나의 꿈을 이루겠다는 나의 열정과 의지로 나의 사공춘기를 마음껏 즐기겠노라고 바다를 향해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