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단짠단짠 더하기 매신쓴

by 숲지기 마야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정과 사건들을 맛에 비유한다면 어떤 맛일까?


즐겁고 기쁜 일은 단맛, 부끄러움은 신맛, 괴롭고 억울한 일은 짠맛, 실패와 아픔은 쓴맛, 열 받고 화나는 일은 매운맛이 아닐까 하고 비유해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맛을 가장 많이 맛보았고, 또 어떤 맛을 더 원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성공이 달콤한 맛이라고 믿었다. 성공을 하면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 같은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노력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현실이 내게 선사한 쓴맛, 짠맛, 신맛, 매운맛을 꾸역꾸역 삼키며 인내하고 참아왔다.


때로는 '이건 왜 이렇게 써, 이건 왜 이렇게 매워. 이렇게 짠 걸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라고 입에 음식을 잔뜩 구겨 넣은 채 불평불만을 쏟아내었다. 달콤하지 않은 다른 맛을 억지로 먹으면서 도대체 내 인생의 단맛은 언제 찾아오냐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달콤함만 바라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가 내 눈에 띄었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 케이크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식사 시간을 앞둔 시간이었는데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그만 먹어버렸다. 입안에서 감도는 달콤함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으로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행복이 느껴졌다.


그런데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밥상을 차리고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은 순간 나는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달콤함을 느낀 혀는 다른 맛에 대한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었다. 분명 배가 고팠는데도 순식간에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달콤함의 유혹은 짧으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인생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한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다양한 일들이 뒤섞여 우리네 삶에서 시시때때로 일어난다.


인생이 희로애락인 것처럼 인생의 맛도 참 다양하다.

그런데 나는 마흔이 넘도록 인생이 주는 다양한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성공과 행복은 달콤한 맛일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느끼한 음식을 먹으면 떠올리게 되는 얼큰한 국물의 매콤한 맛, 피곤할 때 먹으면 힘을 얻는 식초를 듬뿍 친 시큼한 물냉면, 아플 때 먹는 쓰디쓴 한약, 밍밍한 맛을 살리는 소금의 짠맛도 모두 인생의 화려한 맛이었던 것이다.


삼시세끼 달달한 초콜릿 케이크만 먹고살 수는 없다. 케이크는 디저트이지 주식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평생 매운 것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는 위가 성치 않을 것이다.


나는 왜 몰랐을까?


시고 쓰고 짜고 매운 것을 먹을 때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기뻤다는 것을 말이다. 달콤한 맛만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단단히 착각을 하고 다른 맛이 주는 기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인생은 다양한 맛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매운맛

이토록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게 인간을 만드신 신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각각의 맛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 그만의 기쁨과 유익함을 준다. 삶에서 오직 기쁨만 또는 오직 슬픔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인생의 맛을 즐기고 음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니 이제는 그 맛을 다 즐겨보기로 한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다양한 감정이 주는 그 깊은 맛을 내 몸의 수십억 세포가 온전히 깨어나 음미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감각을 열고 느껴본다.


그것이 인생의 참맛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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