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본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by 숲지기 마야

나의 사춘기 시절과 지금의 사공춘기 시절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외모적으로는 뭐 말할 것도 없이 노화가 뚜렷하고, 행동도 빠릿하지 않다. 취향도 많이 달라졌다.


내가 사공춘기라고 우기면 '사공춘기가 웬 말이냐! 갱년기 초기 증상 아니냐'고 누군가는 면박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이 사공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참 많이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도 하나가 있는데 그건 십 대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수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나의 첫 콘서트!


1993년 2월 중1 겨울방학, 나는 창원 KBS 홀 앞에서 촌스러운 교복을 입고 우리 반 부반장인 수진이와 함께 긴 줄을 서 있었다. 그 날은 이승환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정확이 언제부터 그의 팬이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의 음악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창원 KBS 홀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용돈을 모아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다.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수진이랑은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승환의 팬이라는 이유로 급친해져서 콘서트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요즘에는 이걸 덕질이라고 하던데 그때 나는 한창 이승환의 덕질에 빠져있었다. (오래된 사람 냄새...)


겨울이 끝나지 않았던 쌀쌀했던 토요일 오후 우리는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도착해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미니 카세트 테잎으로 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설레어 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공연장 입장을 시작했다.


그것은 내 생에 첫 콘서트였다. 화려한 조명과 공연장을 가득 울리는 음악 소리는 나에게 신세계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열정적인 무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얼마나 목청껏 소리를 질렀는지. 나에게 그런 면이 있는지 나조차도 처음 발견한 나의 열광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의 가수와 함께 소리치고 노래 부르며 나의 첫 콘서트를 경험했다.


그 뒤로도 이승환 덕질은 계속 이어졌고 세월이 흘러 2018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가졌던 그의 콘서트에도 한 달음에 달려가 나의 십 대를 기억하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는 올해 데뷔 31주년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팬들과 함께 '차카게 살자'라는 콘서트와 모금 이벤트를 열어 한국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노래로 만들고 세상을 향해 할 말은 하는 어른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와 타협하기도 하고, 세상 속에 적당히 묻혀 살아가면서 욕먹지 않고 튀지 않으며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삶을 행복한 삶이라 믿고 사는 것이 편안한 삶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이런 생각이 내 가슴을 시커멓게 물들이려 할 때 나는 어김없이 이 노래를 듣는다.


물어본다 / 이승환

많이 닮아있는 건 같으니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워워어 않도록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니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워워어 않도록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너의 꿈을 지키며 살고 있느냐고, 꿈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건 아니냐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너무 신경 써 너의 가슴의 소리는 외면하는 건 아니냐고, 너의 신념을 지킬 마음의 준비가 되었느냐고, 어떤 현실에도 도망치지 않고 피해하지 않고 기꺼이 부딪히며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냐고 묻고 또 묻는다.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의 대답이 조그맣게 들리기 시작한다.


나의 꿈을 이루겠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들의 쓸데없는 걱정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꺼이 마주하고 부딪혀 나가며 나를 지키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아왔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긴 했는데 그건 나의 에고와 욕심인 경우가 많았다. 진짜 나의 진심이라기보다는 나의 이기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40대가 되고 보니 이제야 나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시키는데로 선택할 것이란 것을. 넘어지고 깨지고 부딪히더라도 나는 나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서 나오는 대답을 따라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내 삶을 나의 인생을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는 것도 삶에서 커다란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선택이 경험이 되고 그것이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나의 가수가 31년간 꾸준히 자신의 노랫말처럼 살아왔듯이 그의 팬인 나도 그를 닮아가고 싶다.


푸른 가슴의 꼬마 아이가 간직해 온 소중한 꿈이 이 세상에 마음껏 펼쳐질 때까지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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