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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우드 Oct 30. 2022

풋살 회식에 꼭 가져가야 하는 것은

풋살화를 빌려드립니다.

언니 이거 두 개 가져가세요.

훈련이 끝나고 지친 몸을 잠시 쉬러 벤치에 앉았을 때 그녀가 무엇인가를 건넨다. 포장을 뜯지 않은 작은 가방이다. 실내화 가방처럼 생겼는데, 풋살화 가방이란다.

고마워요, 그런데 난 풋살화가 한 개라 하나면 되는데!
여유롭게 두 개 가져가세요.


사람 좋게 말하는 입단 동기 그녀. 사람들은 당연한 듯 두 개씩 가져가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 말고는 모두 풋살화가 여러 개 있구나.      


풋살을 처음 시작하고 나서 풋살화를 기본적으로 하나 샀는데, 뛰면 뛸수록 풋살화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검은색, 흰색은 기본이고 형광 연두색, 형광 주황색 등 팀원들의 신발이 어찌나 화려하던지, 까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풋살화는 현란하게 반짝거렸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심 한 두 개 더 살까 싶다. 마치 풋살화가 그녀들을 더 신나게 뛰게 만드는 것 같아서였다.     


더군다나 연습 때마다 여러 개의 풋살화와 유니폼을 번갈아가며 색깔 맞춰 입고 오는 동료를 볼 때면, 운동복이 거기서 거기지 하는 나의 착각을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한다. 운동복스럽지 않고, 굉장히 편하면서도 예쁘다. 조금 과장하면 입고 출근해도 될 만큼 디자인과 기능성을 한 번에 갖췄으니, 계속 쳐다볼수록 욕심나는 게 당연하다.

     

예쁜 유니폼에 어떤 풋살화를 신을지 고민하는 것도 행복한 고민이리라. 다만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나는 어쨌든 신발도 하나, 유니폼도 여전히 하나다. 조만간 유니폼도, 풋살화도 사러 가고 싶지만, 당분간은 선물 받은 풋살화 가방은 모셔만 둬야 할 듯하다.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난 후에 여름 단합대회가 있다고 했다. 연습이 없는 토요일 점심에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으쌰 으쌰 힘내자고 한다. 단체경기에서는 개인 실력만큼이나 팀워크가 중요한 거라 웬만하면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황금 같은 토요일 점심 메뉴로 삼계탕이 정해졌고, 각자 밑반찬으로 먹을 만한 것을 싸오기로 하였다. 당연히 식당을 예약해서 모일 줄 알았는데, 풋살장 옆 쉼터 공간에서 직접 차려 놓고 먹는단다. 뭔가 낯설고도 새롭다. 회식인데 굳이 여기서 모일 필요가 있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편하게 회비 걷어서 식당에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살림에 야무진 언니가 나서서 냄비와 가스를 준비하고 준비된 닭을 삶기 시작했다. 직장 회식에서는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여긴 뭐 메뉴도 알아서 정하고 밑반찬도 알아서 가져오고, 이런 자연스러운 회식이라면 언제든 참석 예약이다. 회식이 이러니 왠지 단합도 더 잘될 것 같다. 회식자리라서 편하게 일상복을 입고 간 나와는 달리 팀원들은 편한 체육복을 왔다. ‘운동선수들의 회식은 왠지 다르네’하고 가볍게 여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인삼 냄새가 진동하는, 푹 끓여 국물이 걸쭉해진 삼계탕과 술과 이야기가 끓이지 않는 동안, 우리는 삼계탕과 술과 하나가 되었다. 공기 좋은 야외에서 먹는 삼계탕만큼 맛있는 것이 없었고, 옆에는 수시로 풋살 공이 빠지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래서 여기로 모이라고 했구나. 실컷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나서서 누군가 말했다     

이제 경기를 뜁시다.     


네? 뭐라고요? 실컷 먹고 뛸 수가 있나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씩 주섬주섬 풋살화 가방을 꺼낸다.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나만 어벙벙하게 있고 모두들 손이 바쁘다. 회식은 먹고 노는 시간이니까, 이제 놀 시간이란다.      


평소에 나는 풋살화를 집에서 바로 신고 나가 운전도 하고 경기도 뛰고 했는데 사람들이 풋살화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경기 때마다 꺼내 신었다. 그런데 설마 오늘 뛰자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만 보니 나 빼고 다들 체육복을 입고 풋살화가 준비된 상태라니. 나만 어색하게 평상복에 크록스 차림이다.    


“저 집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얼마나 걸리는데요?” “왕복 20분 정도요”
“그때 되면 경기가 끝나니까 그냥 뛰어요”
“나 풋살화 두 개 있으니까 내 거 신고 뛰어~!”     


얼결에 풋살화까지 얻어 신고 골문을 지키게 되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차 안에 풋살화 서너 개쯤은 무심히 들고 다니는, 이런 멋진 풋살녀들이라니!! 우리 팀이 조금 더 좋아졌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내 신발을 내어주고 싶다. 그나저나 나만 배불리 먹었나, 다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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