읊조리다

빨간 얼굴

by 진이설

지난 금요일. 버스를 타고 지인을 보고 오는 길에 갑자기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인은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과와 고추를 사고 난전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이번 여름 내내 길거리에서 과일을 판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오는 길에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살면서 이렇게 강렬하게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시든 고추와 곪아가는 포도, 그리고 이쁘지 않은 사과를 바구니에 담아

연신 '사과 사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깔린 과일과 고추 가격을 물었다.

채 4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라 10만 원을 주며 접고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지인은 바닥에 깔린 사과와 포도, 그리고 고추를 싸매서 내게 건네려 했지만

나는 사과 세 바구니와 고추 한 바구니만 받았다.


근처 다른 지인에게도 사과와 고추를 사서 주고 담배를 피운 뒤 또 다른 지인을 만나러 나섰다.

그날은 과일 파는 지인에게도, 또 다른 지인들에게도 자그마한 선물을 주었다.


시장 한편에서 노점을 하는 지인은 선물을 받고 눈시울이 붉어졌고 다른 지인들도 고마워했다.


그런 날이라서 그런지 감성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를 읊조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삶을 그냥 대충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그렇게 살았지만

작년부터는 좀 삶을 특별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이렇게 살게 된 이유는 있지만 딱히 어디서 말할 만한 일은 아니다.


지금도 안 좋은 과일을 고르고 점심도 굶어가며 과일을 파는 그녀가 떠오른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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