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냉과 페로탱 신부님의 활약상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2019년 봄, 화마에 휩쓸렸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이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그 안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유실될 것을 걱정했었지요.
노트르담 성당은 그 존재 자체가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한다면
노트르담 성당의 음악가들을 지칭하는 노트르담악파는 전편에서 설명했던 다성부의 음악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장본인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오르가눔의 대가 레오냉, 디스 칸투스의 마스터 페로탱을 선두로 한 노트르담악파는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걸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콜라 칸토룸(성경공부 및 미사 음악 모임이라고나 할까요?)을 중심으로 번성한 다성음악 작곡가들이에요. 이들은 북유럽의 다성음악 형태를 성가에 적용시키고,
각 파트가 다른 음악을 연주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요,
이는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지금 우리와 익숙한 화음으로 발전했어요.
노트르담 성당이 1163년에 그 첫 삽을 떠서 1345년에 완성이 되었다니
사실 레오냉과 페로탱은 그 이전부터 활동을 하시고 성당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실지로는 노트르담 근처에서 활동하시던 신부님들이시지요.
사실, 이 때는 프랑스의 위세가 얼마나 드높았는지,
교황을 아비뇽이라는 프랑스의 남부로 데려다가 아예 로마에 가지 못하게 하고,
약 100여 년을 프랑스에 교황청을 차려 놓았으니(아비뇽 유수 사건이라 합니다),
프랑스의 다성 음악이 교회음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12세기. 13세기에는 교회 음악도 발전을 했지만,
세속 음악도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약 8 세기 경부터 여러 나라를 떠도는 음유 시인들이 음악을 전하기 시작했고요,
11세기부터는 프랑스 남쪽에는 트루바두르가, 북쪽에는 트루베르라는
귀족은 아니지만 서민보다는 위인 노래를 부르는 기사 출신의 음악가들이
궁정을 돌아다니며 시와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네요.
이를 독일에서는 미네징어로 불리다
나중에는 노래 시합을 하는(지금의 미스터 트롯 같은 형식이겠지요?) 마이스터징어로 발전하고,
민스트럴이라고도 불렸다네요.
이들은 악기의 발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현악기와 관악기의 노래를 반주하는 기술은 후대의 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의 음악을 받아들인 노트르담악파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모테트의 밑의 두 줄을 악기로 연주해도 되도록 허락하며
나중에 이것이 기악음악으로 발전됐다네요.
노트르담악파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음악가들의 지역화로
유럽의 특정 지역 출신 작곡가들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저는 서양음악의 패싸움이라고 한답니다.
사람들이 3 명만 모이면 무슨 파 무슨 파가 나타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하는 거라,
저는 이 부분이 서양음악사 중에서 젤로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전에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박자 표기법이랍니다.
모테트가 진화하면서, 작곡가들은 서로 다른 성부에 서로 다른 리듬을 부여하기에,
이를 표시하기 위한 박자 표기법이 필요했지요.
레오냉, 페로탱이 이미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론으로 남기지 않고 작업만 하시다가 간 분들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후대 음악인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었어요.
그리하여,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콜로뉴의 프랑코가
1280년 경에 쓴 그의 책(정량 음악의 기술)에 프랑코식 기보법이라는 새로운 기보법을 선포하였습니다.
프랑코의 기보법은 4 개의 기호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프랑코의 기보법은 3개의 음이 한 묶음인 브레브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3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성부, 성자와 성령의 3개를 뜻하며,
서양에서는 완전한 숫자로 여겨지는 수입니다.
롱가는 3개의 브레브로 나뉘고,
브레브는 또 각각 3 개씩의 세미브레브로 나누어집니다.
다만 제일 위에 있는 듀플렉스 롱가는
2 개의 롱가로 나누어집니다.
아래의 그림은 롱가가 나뉘는 것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3이라는 숫자를 이용한 기보법은 후대에 완전치 못하다고 비판을 받고
2개로 나뉘는 박자는 새로운 기법, 3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기법은 옛날 기법
아르스 노바와 아르스 안티쿠아로 나뉘게 됩니다.
참 복잡하지요?
이는 르네상스로 변화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들에 음악가들이 적응하는 기간이었다고나 할까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사조는 예술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음악 역시 그 흐름을 비켜갈 수 없었던 거지요.
14세기부터는, 재미난 악보들과 음악들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14세기는 다음 시간에 둘러보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유서 깊은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