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잘 살아지는 나를 낳기 위해 시를 쓰고, 독서치료 공부를 하며, 3개월에 한 번씩 회복탄력성 검사를 실시했었다. 검사 결과는 매번 초특급 유리멘탈 나약파로 나왔고, 이 글을 쓰기 전, 올 해의 마지막으로 회복탄력성 검사를 한 결과, 9월보다 11점이나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유리멘탈 나약파 점수대로 나왔다.
1년 간 나름 열심히 노력했으나 끝내 뚜렷한 객관적 변화가 측정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석학으로 유명한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 검사지였다.
그럼 시 쓰기와 독서치료, 심리관련 공부들이 다 헛되었다는 뜻인 걸까.
그래서 오늘, 조금 전 마지막 회복탄력성 검사를 하기 전까지도 나는 실은 회복탄력성이라는 게 뭔지, 노력하면 정말 획득가능한 성질의 어떤 요소가 맞는 건지 희의감이 가득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든달까.
나는 이에 대해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보다는 얼마 전 새롭게 찾아 읽은 이 책을 해답으로 내보려고 한다. 『결국 회복하는 힘』이다.
책의 핵심은 이거다.
회복탄력성이 아니라 "유연성"이라는.
'회복'이라는 용어는 어떤 정해진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온전한 상태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상태로 돌아간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원래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고, 여러 내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병들고 나약해졌던 것이니, 원래의 그 상태로 돌아가는 힘을 통해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회복'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회복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병들고 아프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병들고 아팠던 시간을 통해 좀 더 나은,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외상 후 성장'이랄까.
'유연성'은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방식이다. 병들고 아픈 상태를 유연하게 대처해 내는 능력을 키워서 (병들거나 아프거나 문제가 있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일 뿐 아니라 더 의미있고 새로우며 창조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여전히 초특급 유리멘탈, 불평불만 우울쟁이 인간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무언가를 배우고 깨달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올 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새로운 사람이고, 새로운 우주다.
그런 마음으로 거실 밖 아름답게 노을지는 창가 풍경 속에서 위의 시를 쓰고, 이 글을 남긴다.
2025년. 나는 초특급 유리멘탈 예민쟁이 나약파이지만, 그런 나라고 하더라도 유연하게 잘 살아나가는 내가 될거다. 초특급 유리멘탈 예민쟁이 나약파인 나를 외면하고 거부하며 바꾸려 들지 않을 거다. 그게 올 해 1년 동안 이것저것 노력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인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바꾸라고 외쳐대도,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아무리 끊임없이 말해도 나는 이런 나를, 이런 나라도, 이런 나라서, 이런 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보련다.
1년, 잘 살았나 보다. 마음이 평화롭다.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 사고 희생자 분들을 추모합니다..
25년 1월 4일까지 전국민 애도 기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글을 올리는 것이 마땅한가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희생자 분들께서.. 추모를 위해 슬픔에 휩싸여 제게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삶을 열심히 잘 살아내는 것, 그것 또한 그분들의 넋에 보답하는 또다른 추모라 생각되어 올 한 해의 마지막까지 잘 살아내 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 사고 희생자 분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