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락을 뚝 끊고 지내던 사람이 느닷없이 안부 인사를 보내오기도한다. 그런 사람 열에 아홉은 무언가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취업 시기를 놓쳐서 말인데..."
나는 답답한 마음에 자존심 다 팽개쳐버리고 정헌에게 딱한 내 처지를 까발렸다.
나는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노어과에서 공부하던 때에 정헌을 만났다. 우리 둘은 편입 전형으로 들어왔다. 나는 외대 편입에 실패했으나, 러시아어를 정규 학사과정으로 배워보겠다는 황소고집을 끝까지 부렸다. 같은 해 후기 편입학 전형을 노렸고, 천안에 있는 상명대 러시아어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학기도 안 채우고 때려치웠다. 그리고 이듬해 전기 편입 전형에 다시 뛰어들었고, 이번에는 안성시 대덕면 내리의 허허벌판으로 왔다.
우리 두 사람은 편입생끼리 단짝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정헌은 늘 카자흐스탄으로 가겠다고 내게 말했는데,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공을 살리려고 그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알마티에 있는 우리나라 총영사관에서 행정직원으로 취직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끝까지 붙들겠다는 미련을 버렸던 나는 안성에서 졸업하지 않았고, 명지대 아랍지역학과로 되돌아갔다.
나는 눈만 높아서 재외공관 행정직원 일자리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외교부는 학벌 인플레이션이 유독 심하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온 명문대 출신 외교관들의 등쌀에 행정직원이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행정직원은 정년을 보장받는 공무원 신분도 아니다. 계약직 신분이라 결국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온갖 갑질을 고스란히 인내해야 하며 타국에서 오만 설움을 다 겪는 자리라는 안 좋은 소문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낼모레면 나도 나이가 마흔인데 어디 회사에서 날 신입으로 뽑아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에서 문과 출신 외국인이 취업하기 매우 어렵다. 나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이곳에서 체류하고 있었다. 여권 속지에는 비자 아래에 '취업금지'라는 네모 도장이 꽝 찍혔다. 그냥 이곳에서 팔자 좋게 돈만 쓰고 지내라는 소리다.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이 적법하게 취업하려면 인도네시아 인력으로 대체되지 않는 고급 기술자이거나 해외투자기업의 관리자급으로 와서 현지인 직원을 부려야 한다. 대사관 일자리 외에는 내가 여기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정헌에게 대사관 행정직원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어 볼 작정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나는 신문기사를 발췌 번역하고, 원고를 한 다리 거쳐서 업체에 납품하면서 다달이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꽤 많이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이 일을 용돈벌이 수단쯤으로 가벼이 여겼으나 결혼 후에는 생업으로 귀히 여겼다. 이 업체보다 원고료를 더 많이 주겠다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국에 외주 인력으로 들어가서 외신 영상을 밤샘 작업하며 번역하는 고단한 일은 급여가 월 200만 원을 겨우 넘었다.
요즘 벌이가 줄어들어서 근심의 골이 깊어졌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만큼 욕심을 내서 많이 생산할 수 있었는데, 업체가 신년 사업 계획을 잡으면서 생산량 쿼터를 정해놨다. 이제부터 작성자는 한 편당 원고료로 5만 원을 받는 이슈트렌드를 맡은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게 됐다. 소득은 상자 안에 갇혔다. 빅데이터가 업무에 적용되었고, 프리랜서 작성자들은 주제를 선정할 때 이전보다 더 심해진 간섭을 받게 됐다.
나는 달갑지 않은 변화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다 내 일거리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넋 놓고 있다가 정말 그날이 오면 손 쓸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생도 아무런 준비 없이 그날을 맞이할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그 동생은 국제무역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장사에 수완이 없어서인지 무역 쪽으로 나가지 않고 관광통역안내사, 한국어교원 자격증에도 기웃거렸다.
"준영아, 국제정치나 경제학 분야에서 석사 학위라도 따놓은 거 없니?"
정헌이 답장을 보냈다. 대사관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기야 하겠지만, 내 나이에 말단 행정직원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머슴처럼 만만하게 부려 먹을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은 아무렴 불편할 테다. 정헌은 박사 학위가 있다면 선임연구원이나 전문직 행정직원 자리를 한번 노려보는 게 좋겠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내게 해주었다. 나는 그런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터키 대학원을 그만두지 않고 졸업했더라도, 아세안 지역에 있는 대사관에서 나를 지역 전문가로 인정해 줄 리가 없었다.
"뭐, 지금 하는 일이 당장 없어지기야 하겠어? 번역기가 아직 쓸만한 수준도 아니던데. 괜한 걱정 말고 하던 일이나 그냥 하자."
뾰족한 대책이 없으면 머릿속에 긍정 회로를 돌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편이 당장에는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