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앞을 지나간다. 나는 아트마자야 가톨릭 대학교에 갈 때 수디르만 역에 내려서 고젝(Gojek)앱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부르는데, 기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 이 길을 탄다.
큰길은 아니라서 오가는 차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앞을 수십 번 넘게 지나다녔으나, 철문이 열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사관 건물 외벽에는 멀리서도 잘 보이게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작년 가을에 평양 땅을 밟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포옹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앞을 지나가면서 우리나라 대통령 얼굴을 보다니 어째 기분이 좀 묘하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터지기 전에, 나는 아랍어를 배운답시고 다마스쿠스에서 지냈는데 그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난생처음으로 구경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는 게 그만 반대 방향으로 타버렸다. 차창 밖으로 낯선 풍경이 이어지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린 대문이 보였다. 건물 꼭대기에는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지금 그곳에도 두 사람의 만남을 기념하는 사진이 걸렸을까? 별것이 다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아랍어 과외 선생님이었던 위삼과 연락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철문이 열리더니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머리를 내민다. 차 유리에 새카만 코팅이 입혀져 있어 안에 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국기 봉에 인공기가 달리지 않았다. 대사가 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긴 어렵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비밀 많은 나라의 대사라면 국기를 안 걸고 자카르타 시내를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은 나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오토바이를 모는 사내는 눈치가 빨랐다. 손님이 지금 뭘 원하는지 눈치를 챈 것 같다. 사내는 내가 '남한'에서 왔다는 걸 이미 안다.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꺼내는 첫마디가 대개 "마스 다리 마나"(어디서 왔어요?)다. 속도를 죽이더니 "마우 포또"(사진 찍고 싶어?)라고 물으며 히죽인다.
운이 좋으면 게티이미지나 신문사에 팔만한 사진을 건질지도 모른다. 배낭 안에는 내가 늘 지니고 다니는 일안반사식카메라(DSLR)가 있지만 지금 그걸 꺼내기에는 시간이 없다. 게다가 파파라치처럼 보이면 안 된다. 휴대전화로 몰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게 사진술을 가르쳤던 희석은 내 사진에 작가의 목소리가 없다고 했다. 장치는 잘 꾸며놓았는데, 주인공이어야 할 배우가 없는 텅 빈 무대 같다고나 할까? 사진으로 밥벌이하고 싶으면 붙임성 좋으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과감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나를 보도사진 전시회에 데리고 갔다.
튀르키예 출신으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보도사진 작가인 아라 귈레르가 찍은 사진에는 늘 사람이 있다.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이 아이들에게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였고, 찻집에서 궐련을 피워대는 남자들에게는 사진으로 일기를 써주는 마음씨 넉넉한 친구였음이 피사체들의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게다가 장난감 권총의 총구를 입에 물고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하는 남자아이와 그 옆에 소년의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하루 양식으로 일용할 화덕 빵*을 꼭 끌어안은 채 카메라를 뻔히 바라보는 사진에서는 쿠데타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좌우 진영의 정치 깡패들이 자신들과 생각이 달라 보이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던 어두운 시대의 자화상이 엿보인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화면 안에 잘 담지 못한다. 카라쿄이 부두에 열 맞춰 정박한 새하얀 연락선 앞에 나는 뱃사람을 세워두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닷바람에 잘 단련되어 우락부락하지만 신경질적일 것 같지는 않은 사내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었다. 낯선 이에게 마음을 곧잘 여는 터키 사람들답게 뜨거운 홍차와 바클라바를 탁자에 놓고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 사내와 나는 금세 친해질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내게 먼저 손 내밀어 친하게 된 터키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먼저 손 내미는 법을 모른다. 내 사진은 유희(遊戱)를 벗어나지 못했고, 희석은 날 더 붙잡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일 걸 알았는지 교류를 끊어버렸다.
인공기가 펄럭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에서 검은색 세단이 나오는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순간에,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렌즈를 들이대면 북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종간나새끼"라고 소리치며 '남조선 아새끼'의 손전화를 빼앗으려고 거칠게 달려들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작년에 바로 이웃 나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남이 비명횡사했고, 인도네시아 국민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이곳이 떠들썩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사이에 검은색 세단은 커브를 돌아 도로를 탔고 시야에서 멀어졌다. 결정적 순간을 놓친 나는 싹수가 노란 제자를 버리고 떠났던 사진술 멘토의 목소리를 듣는다.
"넌 사진으로 밥벌이 못 해"
*화덕 빵(odun ekmek): 터키 서민들의 주식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빵 공장이 화덕 빵을 매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