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을 걷는 유목민
이곳 분위기는 정적만이 흘렀던 7급 공무원 PSAT 시험장과는 사뭇 다르다.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건물 밖에서 담배를 태우는 중년 남성들이 있었고, 애티가 흐르는 여자 두 명이 복도에서 베트남어로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한겨울 공기가 무척 차가웠지만 훈훈하게 여유가 느껴졌다. 시험에 합격한 뒤에 맞이할 현실은 치열한 전투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남을 이겨야 살아남는 생존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험자들은 나이대가 복잡하게 뒤섞였다. 몇 해 전 PSAT에 응시했을 때 교실 안에서 내가 나이 짬이 가장 높았는데, 지금 이 공간에서 나이로 서열을 세운다면 나는 중간도 못 갈 것 같다. 대한민국 중위연령이 여기서 기가 막히게 딱 맞아떨어진다.
나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려고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플렉스 시험에 응시했다. 작년에 아내가 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가이드로 뛰고 있다. 내가 이 자격증으로 먹고살 수 있을는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아는 동생과 함께 8년간 해왔던 신문기사 번역일이 끊기면서 '전업 주부' 남편이 된 터라 이제 뭐든 해봐서 손해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번역행정사 자격증을 딸지 고민하다가 관광통역안내사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시험 감독관이 들어올 때까지 나는 인도네시아어 신문을 읽고 있었다. 잠깐 뒤를 돌아봤다. 안경을 코허리에 걸쳐 쓴 중년 남성 한 명이 교재를 들춰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뒤 소일거리를 찾거나 취미 삼아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에 도전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주된 직장에서 밀려나서 억지로 두 번째 인생으로 내몰린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쳤던 몸부림이 떠오른다. 부질없는 욕심에서 나왔던 몸부림도 있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뚝심으로 밀어붙여 끝장을 봤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던 몸부림도 있었다. 그러나 다 지난 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지나간 삶을 묻어두고 여기 앉았다. "내가 옛날에 뭘 했는데" 하고 끄덩이를 잡아 끄집어 내보이려 해 봐야 남사스럽기만 하다.
내가 터키에서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지도교수에게 알렸던 바로 그날에 연락선을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다. 이제 이스탄불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데, 파티(Fatih)로 가서 이 도시를 정복한 메흐멧 2세의 이름을 딴 모스크에서 밤 예배를 드리고 싶어졌다. 석양 녘에 엔진이 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가면서 배가 움직였고, 출렁임이 느껴지는 선실 안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이 사즈*를 켜기 시작했다. 노인은 터키 음유시인 아쉬크 베이셀(Aşık Veysel)이 쓴 시를 사즈 소리에 맞춰 구슬프게 읊어나갔다. 나는 홍차 찻잔이 가득한 쟁반을 손바닥에 이고 때마침 옆을 지나가는 이동 판매원에게 한 잔 내어달라고 했다.
Uzun ince bir yoldayım/Gidiyorum gündüz gece/Bilmiyorum ne haldeyim/Gidiyorum gündüz gece
길고 좁은 길을 걷고 있네/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네/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Dünyaya geldiğim anda/Yürüdüm aynı zamanda/İki kapılı bir handa/Gidiyorum gündüz gece
세상에 태어난 순간/곧바로 걸음을 내디뎠네/두 개의 문이 있는 여관에서/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Uykuda dahi yürüyom/Kalmaya sebep arıyom/Gidenleri hep görüyom/Gidiyorum gündüz gece
잠 속에서도 계속 걷고/머물 이유를 찾으려 하네/떠나간 이들을 바라보며/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Kırk dokuz yıl bu yollarda/Ovada dağda çöllerde/Düşmüşem gurbet ellerde/Gidiyorum gündüz gece
마흔아홉 해를 이 길에서/평원과 산과 사막을 지나/타향에서 떠돌며/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Düşünülürse derince/Irak görünür görünce/Yol bir dakka miktarınca/Gidiyorum gündüz gece
깊이 생각해 보면/멀리 보이는 것 같지만/길은 한순간 지나갈 뿐/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Şaşar Veysel hep bu hale/Gah ağlaya gahi güle/Yetişmek için menzile/Gidiyorum gündüz gece
정신이 어리둥절할 따름/때론 울고, 때론 웃으며/쉴만한 곳에 닿으려고/나는 낮과 밤을 걸어가네
사즈를 뜯는 노인이 불러낸 유목인의 혼은 마음 잡지 못해 이리로 저리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내 영혼을 알아보는 듯했다. 한곳에 머무를 생각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는 동안 십수 년이 흘렀다. 친구들은 나를 터키 땅에 정착시키려고 했다. 이스탄불의 명물 메이든 타워(Kız Kulesi)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부모가 돈두르마*장사를 한다는, 카흐라만마라슈(Kahramanmaraş) 출신으로 그리스인 피가 섞여서 얼굴이 뽀얀 여자를 내게 소개해 줬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어야 했고, 그래서 제 멋대로 사는 데 만족했다. 금요일마다 모스크에서 회중 예배를 마치고 이태원 터키 식당에서 케밥과 피데*를 앞에 놓고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에 열을 올렸던 이십 대 청춘들은 저마다 LG에 들어가고 현대에 들어가서 답답한 조직 생활에 갇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품었던 꿈을 잃고 쳇바퀴 굴리는 신세를 푸념하면서도 위계 사회에서 어떻게든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위로 올라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는 대열에서 이탈했다. 중동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를 뜯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오스만제국사에 몰두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한 곳을 향해 뛰어나가 마침내 등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나는 신문을 읽고, 잊고 지낸 아무개가 어느 회사의 지점장으로 소개된 기사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내 삶을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의 삶을 시기하지도 않는다. 후회는 부질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짓이고, 시기는 본디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욕심에서 나온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그들을 쫓아가지 않고, 낮과 밤이 교차하는 끝 모를 이 길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사즈(Sazı): 터키의 전통 현악기로 배 모양의 공명통을 지녔다. 감흥에 사로잡혀 즉흥시를 지어 노래하는 음유시인(Aşık)들이 즐겨 사용하는 악기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삶, 철학, 종교, 사회적 문제 등을 노래했다. 아쉬크 베이셀은 맹인으로 태어났는데, 사즈 연주와 시를 통해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돈두르마(Maraş dövme dondurması): 터키 동부 지방인 카흐라만마라슈에서 유래한 전통 아이스크림.
피데(pide): 피자처럼 납작한 모양의 빵의 일종으로, 터키와 중동 지방의 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