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파에 든 전문직 바람
먼지 냄새가 잔뜩 밴 새벽 공기를 뚫고, 곳곳에 고인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나는 좁은 골목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통근열차를 타려고 육교를 건넌다. 타는 곳에서 등짐을 앞으로 매고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동트기 전 이른 아침이지만 열차 안은 이미 앉을 자리가 없다. 열차는 출발점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오면서 공간을 반쯤 채웠다. 이제 열차가 정차역 몇 군데만 더 들르고 나면, 몸 돌릴 작은 틈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더 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나는 앞 사람과 뒷사람 사이에 끼어 찌그러진다. 밀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다. 지금 타지 않고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가는 열차에 오르기 더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서 가기도 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 앉기도 했다. 불쾌한 신체 접촉은 열차가 첫 번째 갈아타는 역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가량이나 이어지지만, 신기하게도 욕설을 내뱉거나 다툼을 벌이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오전 여섯 시가 되어 열차는 수디르만 역에 멈춰 섰다. 문이 스르르 열리자마자, 나는 뒤에서 밀어내는 힘에 중심을 잃고 승강장으로 쏟아지듯 발을 내디딘다. 해가 떴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 필터를 끼고 있다. 미세먼지가 눈과 코를 더 심하게 찔러댄다. 오늘 해가 중천에 자리를 잡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사람들이 비타민D가 부족한 게 다 이유가 있다.
길가에는 녹색 점퍼를 입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어지럽게 엉켜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 까끼리마*들이 튀김 음식을 팔고 있다. 아침밥 못 먹고 나온 사람들은 군것질거리로 빈속을 채운다. 아침밥을 집에서 꼬박 챙겨 먹을 여유가 있으면 중산층에 속한다.
나는 오늘도 생면부지 사내의 등을 뒤에서 잡고, 매연을 잔뜩 뿜어대는 차들의 꼬리를 물고 도로를 달린다. 이 도시에서는 탈 것으로도 사회적 계급이 드러난다. 한평생을 육체노동에 바쳐도 자가용을 소유할 형편이 안 되니 출퇴근길에 매연을 맡을 수밖에 없다. 건강 상태도 탈 것으로 결판난다.
젠장. 아내가 그렇게 잔소리했건만 나는 마스크를 또 집에 두고 왔다. 아까 카스텔라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을 때 마스크를 사야 했다. 노쇠한 버스가 앞에서 시커먼 방귀를 뀌어댄다. 온갖 화학물질이 내 허파로 그대로 들어온다. 나는 숨을 될 수 있는 대로 참아본다.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 1교시 수업까지는 아직 삼십 분이 남았다. 아침밥은커녕 눈 비비고 고양이 세수하고 나오기에 바빴다. 벤치에 앉아서 지금 카스텔라를 까먹어야겠다.
인도네시아에서 은행은 여덟 시에 문을 열고 어학원도 1교시 수업을 여덟 시에 시작한다. 내가 결혼 전에 체류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잠깐 다녔던 이슬람대학교 대학원도 하루 첫 강의를 여덟 시에 시작했다. 그런데 아트마자야 가톨릭 대학교의 법학과 1학년 강의는 이보다 한 시간 앞당겨 일곱 시에 시작한다. 수강 신청할 기회도 없이 1학년 학생은 모두 반이 자동으로 배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꼭두새벽부터 길을 나서야 했다. 그래도 오전 열 시에 수업이 모두 끝나는 덕분에, 나는 학교 근처 쇼핑몰에서 점심 같은 아침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번역 원고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는 아내의 나라에서 닻을 내리고 살아보기로 결심한 뒤 신문 기사나 번역하는 자질구레한 일 말고도 제대로 밥벌이가 될 만한 일을 탐색해 나갔다. 그러다 한인 변호사가 이곳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일간지에서 읽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날로 허파에 전문직 바람이 덜컥 들어버렸다. 여기서 법률만큼이나 유용하게 써먹을 지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일 년 동안 법서(法書)들만 들이팠다.
인도네시아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하면 변호사 시험(Ujian Profesi Advokat)에 응시할 자격이 생긴다. 단, 인도네시아 국민에 한해서다. 나는 귀화까지 각오하고 덤벼들었다. 단기체류자격(ITAS)을 5년 연속 연장하면 장기체류자격(ITAP)이 부여되는데, 장기체류자격을 받아야 귀화 신청 대상자가 된다.
무사히 귀화 신청 단계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큰 산이 여전히 남는다. 법무부와 국정원이 세월아 네월아 내 뒷조사를 벌일 테고,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 행정 비용으로 금전도 꽤 많이 갖다 바쳐야 할 것이다. 여기서 큰 사업을 일궈서 세금도 많이 냈고, 재산을 지키려고 귀화 신청을 했던 한인도 국적을 얻을 때까지 3년 넘는 지루한 기다림을 견뎠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몇 년이나 걸릴까? 짧게 잡더라도 8년은 더 걸릴 것 같다. 신문 기사 따위나 번역하면서 그 긴 시간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월요일 첫 시간에 '국민윤리' 수업을 듣는 내내 불편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까끼리마(kaki lima): 인도네시아에서 수레를 끌고 나와 음식을 파는 노점상을 일컫는 말. 인도네시아어로 '다섯 다리'라는 뜻인데, 수레를 끄는 자전거 다리 세 개에 사람 다리 두 개가 합쳐져서 다리가 다섯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