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빵 Nov 15. 2024

우리만의 소통수단.

: 키오스크에 관하여.

키오스크는 무인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요즘엔 식당이든 카페든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키오스크지만, 

유인업에서의 사용과, 무인업에서의 사용에 있어 키오스크의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상가는 주변에 특별한 경쟁상권이 없고, 학교와 단지, 방송가에 둘러싸인 특수 상권이다. 

초등학생은 물론, 방송사 사람들, 단지 내 사람들이 우리 가게의 주 타깃이었다.      


상가오픈을 할 때 딱히 떡을 돌리거나 하지 않았다. 

무인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 반가움보다 반감이 더 클 수 있기에...

주변 상가들과 너무 잘 지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체인업의 당부가 

여러모로 합리적인 지침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이 단지에 살고 상가를 애용하는 주민이기도 하다.  

김밥집 사장님 부부는 딸내미를 너무 이뻐해 주셔서 인사는 기본이요, 가끔 반찬도 나누고, 가장 가까운 외식 단골집이었다. 편의점은 아르바이트생 아주머니랑 딸내미 간식 사러 들르다 친해져 언제든 만나 스몰토크를 나눠도 거리낌 없는 사이였고, 공실로 있던 스터디카페는 김밥집 사장님과 친해 덩달아 인사하며 알게 된 사이였다. 모른 척하기엔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상가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단지 내 이웃들이었다.      


나는 딱히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 없었다.  

    

작은 단지라 인사만 해도 대충 어디 라인에 사는 누구네인지는 알 수 있는 거리감이건만…. 

외동딸은 유치원까지 다른 동네로 다녔고, 성향상 집순이에 학원도 다니지 않는 덕에 더더욱 단지 내 엄마들과 접점은 없었다. 나 역시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면서 집에 콕 박혀, 집은 그저 일터요, 단지는 그냥 단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채 지냈다.      


그런데 문구점을 오픈하면서, 동네 주민들의 성향을 잘 모르는 여러 상황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행여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졌던 분들이 계시면 어떡하지?

학교 바로 앞에 문구점이 생기는 걸 반대하시는 학부모들이 있지 않을까?

외면받을까 전전긍긍하는 강아지처럼 혼자 똥줄이 탔다.      



그런 내게 의외의 소통수단이 된 건 ‘키오스크’였다.   




   


카드와 현금결제가 동시에 되는 키오스크를 사용하다 보면, 의외로 주인 찾을 일이 많은데.      


1. 잔돈이 떨어진 경우.

2. 지폐가 씹혀서 안 나오는 경우. 

3. 지폐 투입구에 신용카드를 넣는 경우. 

4. 키오스크 오류로 결제가 안 됐거나, 잘 못 된 경우. (윈도, 프로그램, 바코드문제 등.) 

5. 각종 페이류에 대한 문의나, 계좌이체 문의.

6. 신용카드 분실 문의.     


키오스크 담당자로 되어 있던 내 폰은 수시로 울렸다.      


4 ~ 5번같이 전화로 해결 가능한 사한은 상관없지만, 1 ~ 3번은 키오스크를 열어서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했다. 그 말은 무인이지만 주인의 낯짝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소리. 


처음엔 손님과 대면하는 게 어색했지만, 긴장이 풀리니 점점 사람들 대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오히려 손님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며 가족단위 분들이라면 같은 단지 분들이 신지, 아이가 같은 학교 다니는지, 방송가 분들이라면 무슨 촬영을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서스름 없었고, 서비스 상품도 드리며 한분 한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문구점은 단순한 장사를 넘어 일종의 소통창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3일에 한 번씩 키오스크 안 잔돈을 채워주고 모아진 현금을 가져와야 할 때다. 

키오스크 전원도 일주일에 한 번씩 껐다 켜줘야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므로, 손님이 없는 오전이나 늦은 밤에 몰래 가서 키오스크를 열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꼭 손님이 오신다.   

   


키오스크 안을 보여준다는 건... 

몰래 쓴 일기장을 엄마에게 들킨 기분이랄까?      


어딘지 부끄럽고 쑥스러운데, 그럴 땐 키오스크가 재부팅될 때까지 손님에게 필요한 물품은 없는지, 

아이스크림은 무슨 요일에 입고되는지, 가벼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또다시 손님들 얼굴을 익혔다.   


가끔 잔돈 지폐가 반쯤 접혀있는 경우 오류가 나는데, 큰맘 먹고 배춧잎을 넣은 초등학생들 입장에서 여간 큰일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 키오스크를 열고, 지폐 중 접혀있는 부분을 펴서 다시 놓기만 하면 끝이지만 키오스크를 직접 여는 일은 주인 외에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기에 반드시 아이들을 대면해야 했다. 그렇게 아이들 얼굴도 하나하나 익히며, 얼마나 귀한 용돈이었는지... 어린이의 간절하고도 소중한 마음도 곱게 알아봐 줘야 했다.      


가끔 골 때리는 케이스로, 지폐 투입구에 신용카드를 넣으시는 분들이 있다.

이 부분은 정말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현금결제 위주로 하는 어린이들의 수입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할머니뻘 되시는 어르신이 실수로 신용카드를 지폐입구에 넣으셨는데, 내가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공손이 모은 모녀가 90도로 인사를 하시며 그동안 다른 현금 손님들이 결제를 못하고 가신걸 매우 미안해하셨다. 다행히 5분 안에 키오스크를 열어 문제를 해결했지만, 무엇보다 계속해서 미안해하시는 그분들 덕분에 오히려 훈훈해지기까지 했다.      


반면, 멀리 외출해 있을 때 같은 실수를 하셨던 또 다른 할머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분은 우리 단지에 거주하시며 고학년 손주와 자주 들리셨는데, 어느 날은 내게 이런 완구류는 싹 다 치우라고 호통 아닌 호통을 하셔서 꽤나 감정이 상한 적이 있었다. (손주는 창피해하며 나가버렸다.) 

그랬던 분이 지폐투입구에 신용카드를 야무지게 넣어 실수를 하신 것이다.      


빨리 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현금결제를 못한다는 건 인지하고 계시면서도, 이 정도 일은 장사하는 그쪽이 감수해야지… 같은 당당함으로 일관하셨고, 외부에 있으니 몇 시간 걸려야 키오스크를 열어 카드를 빼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자, 오히려 자기 신용카드를 그 사이 누가 빼가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많은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      


결국 그날은 약 4시간가량 현금매출을 중지시켰고, 현금결제를 못하게 된 초등학생들이 불편해하긴 했지만 그간 쌓아온 신뢰로, 비밀공간에 결제금을 놓고 가는 식으로 영업을 이어갔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곧장 문구점으로 달려가 신용카드를 빼드렸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은 없었다. 


그런데 한쪽 아이스크림 유리 덮개엔 엄청난 양의 크림류 아이스크림이 부침개처럼 녹아있었다. 누군지 양심이 없네 하며 투덜거리며 닦았는데, 나중에 CCTV 녹화영상을 확인했더니 방금 그 할머니가 낮에 아이스크림을 먹다 남겨서 그곳이 엉망이 된 것이었다….      


장사를 하다 보면 당연히 이런저런 손님들을 만나는 일이 당연하고, 무인이라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만나게 된 계기가 키오스크였던 것뿐이지. 


"어쨌든, 우리 가게 단골이시잖아.” 


하며 마음을 가다듬자, 이웃들과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게 해 준 키오스크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모든 내용은 작가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견해이니, 이점 참고부탁 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