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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빵 Nov 12. 2024

일일 근무시간

: 휴~ 평균보다 낮네.


“다*소 직원이 하루에 1시간만 근무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게 잘 돌아가겠어요?”     


띵 -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무인인데 무인이 아니라고?      

무인인데 가게에 주인이 오래 있는 건, 손님들한테 더 폐가 아닐까?     


매주 한 번씩 가던 문구도매점 사장님의 조언이었다.      

무인이라고 진짜 무인처럼 운영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렇다.

무인이지만 유인한 의미 중 하나는,

있는 듯 없는 듯 가게를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CCTV를 주야장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게는 식물처럼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빛을 발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무인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 초도가 들어가니 정말 빼곡하게 물건들이 가득했다.

문구점 사장으로선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이 정도면 올 만 하지 않아?


주변에 문구점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일렬기차로 바짝 붙어 가게를 구경했다.   

   

초등생 첫 하교 시간인 12시 40분을 기점으로, 1시간 간격으로 아이들은 진을 쳤다.

날씨가 더워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아이들은 기본이고, 다양한 문구류를 구경하러 왔다가 젤리나 사탕 과자 등을 사는 아이들도 많았다. 학원 가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러 오는 아이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자석처럼 아이들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주변 상가의 부러움을 받으며 상권을 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곳 근처엔 차로 10분 거리에 문구 도매점이 있어서,

문구 도매만큼은 꼭 직접 가서 보고, 사 오는 게 좋다는 체인업의 조언이 있었다.   

   

엄청난 컨테이너 보관함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요즘 유행하는 문구 아이템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이미 다른 문구점 사장님들도 많이 계셨는데, 빨리 물건을 확보해야 하기에 서로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나 역시 어느새 양손 가득 신상 물건을 집고 있었다.


그렇게 100L 쓰레기봉투 두 봉지 정도되는 물량을 확보한 나에게

사장님은 무슨 물건이 유행인지, 잘 안 나가는 물건은 이유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외계어인가?     


필요한 물품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거나, 눈으로 직접 찾아서 이거요, 저거요 하는 식으로

물건을 샀던 나에게 포켓몬 카드와 같은 문구류는 일단 종류도 너무 많지만, 잘 외워지지 않았다.  

    

“낙원의 드래고나, 151, 샤이니트레져, 미래의 일섬, 스노우 해저드, 나이트원더러, 클레이버스트…”     

(이 외에도 무한대의 카드들이 있으나 생략하겠다.)      


포켓몬= 피카츄만 알던 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조차 보지 못했고,

그나마 팬시중에 아는 캐릭터라곤 산리오 시리즈가 다였으니,

먼작귀, 최고심, 모루인형 만들기, 최애의 아이, 티니핑 시리즈, 무한의 계단, 브롤스타즈, 김수열줄넘기, K리그는 물론 프리미어리거 축구카드 시리즈, 축구공시리즈 등등…

모든 품목들을 하나하나 익히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

내가 초도로 받은 물품의 가짓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문구류 64가지 + 아이스크림 135가지 + 음료 및 스낵류 212가지…

그렇게 총 411가지의 물품을 머릿속에 업데이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꼬마 손님이 와서.      

“사장님, 혹시 먼작귀 랜덤 지우개 어디 있어요?”     

라고 물으면 먼작귀가 무엇인지, 랜덤지우개 코너가 우리 가게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없다면 들여올 수 있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답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는 소리다.     


작은 평수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9평짜리 가게에도 저 많은 가짓수가 들어가는데, 물량도 적지 않기 때문에

위치 찾기가 의외로 어렵다.

 

스낵이라고 다를까?

초도는 말 그대로 오픈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에 봉지과자 하나도 5봉 이상 주문해주지 않았다.

즉 한 봉지라도 팔리면 재고를 찾게 되는데, 신상 과자이거나 내가 모르는 젤리거나,

해외 물품일 경우 더 그 이름과 모양새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빠를수록 재고파악과 주문은 물론, 고객이 찾는 물품공급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고객이 물건을 사갔는데, 키오스크 오류로 CCTV로 빠르게 사실확인을 해야 할 때! 영수증 리스트에 나와있는 물건과 외형을 영상을 봐도 잘 매칭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도 참 답답한 일처리가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결국 나는 하루 스케줄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고민하며 실천했다.    

  

아침에 청소를 하고, 물건 채워놓고, 재고를 파악하고, 가격표 체크하고, 새로운 물품 등록하고, 정리를 하면서 물품의 이름과 외형을 매칭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다 하려면 어려우니, 제일 잘 나가지만 제일 외우기 어려운 포켓몬, 유희왕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나가는 물품은 문구도매점을 자주 가면서 가장 빨리 익히게 되었다. )

     

그렇게 아침 청소 및 정리, 점심에 고객의 니즈, 서비스 드림, 저녁엔 중고등학생이나 어른 손님들 취향, 물건 위치파악, 동선이 나쁘거나 눈에 잘 안 띄는 물건은 없는지, 눈대중으로 가게 구석구석을 익히는데 평균 4.5시간이 소요되는 놀라운 노동이 시작되었다.


※ Tips. 최소 3개월정도 유지하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약 3개월을 지속하자, 단골들이 늘기 시작했고.

물건 위치를 바꾸거나, 가격변경을 하거나, 새로운 물품이 들어오거나, 리뷰노트에 댓글을 달았거나. 가게의 소소한 변화에도 고객들은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나의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파이팅' 같은 문구를 노트에 남겨놓기도 했다.


가게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 같았다.





*모든 내용은 작가의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견해이니, 이점 참고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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