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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Nov 15. 2024

산 낙지

나를 슬프게 하는 낙지들

 우리 동네에는 푸드 트럭이 요일별로 온다. 메뉴도 가지가지. 팔천 순대, 어묵 꼬치, 도너츠, 돈가스, 닭꼬치, 호떡, 타코야끼. 때 되면 찾아오는 트럭 덕분에 오늘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행복하다. 


 “오늘 어묵차 왔나요? “,”네, 우체국 앞에 있어요.”

“오늘 무슨 음식이 왔나요?”, “순대 차 와있네요. 오늘 우리 집 저녁은 순대입니다.”

커뮤니티는 푸드 트럭 안부를 묻는 글로 문전성시.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고맙다는 마음을 남긴다. 


 그중에 큰 인기는 세발낙지가 받는다. 내륙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보니 갓 잡은 해산물 먹기가 쉽지 않은 곳. 이곳에 작년부터 산지직송을 내걸고 청청한 바다를 싣고 오는 트럭이 있다. 자그마한 1톤 트럭을 개조해 규모 있게 시설을 갖춘 가게는 LED 간판과 색색 조명도 달려있다. 빨간 고무 대야 두 개에 싱싱한 생물들을 담아 보기 좋게 전시하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힘 좋은 낙지를 탕탕.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계모임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밥을 먹고 때 되면 함께 여행 다니던 시절. 아직 선명하게 남은 추억 중엔 남해에서 먹은 세발 낙지가 남아있다. 소금 섞인 참기름과 함께 나온 토막 난 낙지다리들. 친구들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낙지다리와 사투를 벌일 때 나는 펑펑 울었다. 동강 난 조각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공포영화에서 나온 귀신처럼 보였으니까. 


 그때 충격으로 낙지와 관련된 음식은 하나 입에 대지 못하고 자랐는데. 어느 날 세발 낙지 때문에 다시 통곡하고 말았다.  

“산 낙지가 천장에 딱 붙어 있어. 산 낙지가 너무 먹고 싶어.”

기다리던 첫 아이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극심한 입덧으로 물도 먹지 못하면서 산 낙지를 찾았다. 

“산 낙지, 산 낙지, 산 낙지. 참기름에 쓱 발라 먹고 싶어.”


 산 낙지를 향한 욕망이 끝없이 폭발하며 펑펑 울고 있으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그 입덧 참 희한하네. 평소에 쳐다보지도 못하는 게 먹고 싶다니. 그렇게 먹고 싶으면 먹어.”

그러나 첫 아이를 임신한 여자는 예민함이 하늘을 가르고 우주 끝에 닿아 있지 않은가. 먹어도 된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온갖 키워드로 인터넷을 뒤졌다.

임신 중 산 낙지, 임신 중에 산 낙지 먹어도 되나요? 임신 중에 날 것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임신 중에 임신 중에 임신 중에…


 “낙지 머리에는 고래 회충이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임신 중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회충에 감염되면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는데 검사나 치료를 할 수 없어 산모와 태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열 달 내내 나는 산 낙지와 사투를 벌이다 첫째를 낳았다. 

“여보, 이제 아기 낳았으니까 산 낙지 먹어.”

열 달 내내 힘들어하던 나를 안쓰럽게 여기던 남편. 하지만 낳고 나니 남해에서 겪었던 공포가 떠올랐다. 동강 난 낙지다리 탈출 사건. 

“아니, 안 먹고 싶어.”


 남편과 산책을 나갈 때면 밤늦도록 절찬 판매 중인 산 낙지 차를 만난다. 그때마다 남편은 그 옛날 산 낙지 타령을 소환한다.

“그때 산 낙지 먹고 싶다고 펑펑 울었잖아, 너.”

나도 아직 왜 하필 산 낙지였는지 궁금하다. 임신 중에 생기는 별난 식욕은 나만 겪는 일은 아닌 듯하다. 마치 또 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듯 예비 엄마들은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 먹고 싶어 힘들다. 고기 안 좋아하는 데 평생 먹을 고기 오늘 다 먹었다는 글. 한 겨울 호박잎이 먹고 싶어 짜증 난다는 글.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못 먹겠다는 글. 너무 많이 먹어서 살찌는 게 겁난다는 글. 하루 종일 밥 한 톨 못 먹고 쓴 물까지 토해도 뱃속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고 평생 입 댄 적 없는 산 낙지가 먹고 싶어 울던 나처럼 입덧으로 괴로운 사연이 오늘도 커뮤니티를 채운다. 생각하면 할수록 한 생명을 잉태하는 경험은 경이롭다. 


 힘든 열 달 꾹꾹 참고 낳은 아이는 어느새 내 눈 밑까지 자랐다. 자기주장이 남다른 아이(라고 쓰고 고집이 세다고 읽는다.)는 때로 이유 없이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었고, 때로 망부석처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와 지나가는 버스를 지켜봤다. 그때마다 산 낙지를 참던 마음으로 내 인내를 끌어 썼다. 인내심은 바닥이고 충동성 높은 기질을 타고난 내가 성숙한 인간이라는 성격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산 낙지와 아들이 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나선 길. 앞서가는 뒷모습에 웃음이 절로 터진다. 노을이 예쁘다는 한 마디에 포즈를 취하고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어주는 아이 덕에 느낌표가 쏟아진다. 산 낙지를 눈물 콧물로 참으며 낳은 아이. 세발 낙지 공포는 인내의 기쁨이 대신하고 그 기쁨에 취해 오늘도 남은 청춘을 물려주며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여전히 산 낙지는 먹지 못하지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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