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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Oct 10. 2020

눈 내리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얼마나 예쁠까?


나에게 있어 날씨는 각기 다 다른 매력이 있어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날이 맑으면 맑은데로 참 좋다.

걷고 싶어 지는 날씨가 있고, 그저 창밖을 응시하고 싶어 지는 날씨가 있으며, 그늘에 누어 내리쬐는 볕을 보기만 해도 좋은 날씨가 있다.

그럼에도 그중에 최고를 정하라고 묻는다면, 난 언제나 풍성하게 무언가 내릴 때를 꼽는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봄 밤이 그렇고, 함박눈이 도시 전체를 채우며 쏟아지는 날이 그렇다. 

난 곧잘 일 년 내내 ‘기다리는 마음’을 아끼고 아껴 그 시기에 사용한다.

벚꽃이 그 이파리도 없이 매달린 꽃망울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온도가 떨어져 진눈깨비 따위가 아닌 아주 선명한 눈이 내려주기를 기다린다.  


눈이 내리는 모양은 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쌓인 눈도 좋고, 쌓인 그 위로 맑은 날이 찾아오면 그 눈을 가지고 놀던 추억으로 뽀드득뽀드득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리는 눈만큼의 설렘만큼은 아닌 듯하다.

조금씩 가볍게 날리는 눈발은 컴컴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히 대비되어 더욱 반짝이고 보드랍다.

그래서 내리는 눈은 꼭 밖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바라봐야 제맛이다.

캄캄한 하늘 전체를 끌고 내려오는 것처럼, 하늘이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낮아진다.


하지만 이 눈이란 녀석은 통 티를 내지 않는다.

‘눈이 올 것 같은 날씨’ 여서 애타게 기다려 봐도 어둑해지기만 할 뿐 내리지 않기 일쑤고,

좀 내리는 가 싶어 쫓아나가 봐도 어느새 후둑후둑 비와 섞여 축축해진다.

또 대부분은 자고 일어나 보면 쌓인 채로 그쳐있기 일쑤여서 눈 오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눈도 오는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눈 오는 소리는 얼마나 예쁠까?


#

일상의 참 많은 좋은 것들이 눈처럼 소리 없이 쌓이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걸 모르고 지나치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참 좋았구나’ 싶어 진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자면, 단품 된 커피우유 같은 것들.

매일 마시던 커피우유가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아, 주인아저씨께 여쭤보니 단품 되었다고 했다.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고.  

처음엔 그저 너무 달지 않아 자꾸 손이 갔던 것뿐이었는데, 더 이상은 마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너무나 간절히 마시고 싶어 졌다.

이렇게 눅눅한 출근길에 그 커피 우유 한잔이면 꽤 괜찮은 위로가 되었는데.

‘고작 900원으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가?’ 생각할 정도로 혀와 입천장 사이로 그 심심한 단맛을 더듬어 추억하느라 바빠졌다.

퍽 아쉬웠다.


라일락 향이 가득한 늦은 봄 밤이 그렇다.

석촌호수를 따라 걷는 고즈넉한 어스름도 참 좋고, 가끔은 점찍어둔 옷가게에 새 옷이 디스플레이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늦게 배운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는 일이나, 음식을 하기 위해 잘게 썬 양파나 마늘 편을 볶아내는 그 고소한 냄새를 좋아한다.

일요일 오후 멍하게 빨래 돌아가는 모양을 보는 것도, 잘 말려낸 보송한 빨래 더미에 코를 묻는 것도 참 기분 좋아진다.

사실 행복이란 게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데서 느껴지는 경우가 참 많은데, 알아채고 ‘행복하다’는 걸 인지하지 않으면 모른 채 스르르 스쳐 지나가기 일쑤이다.


사람의 온기도 그렇다.

‘사랑’의 온도는 분명 사람이 가진 체온보다 높기에 그 든 자리도 난 자리도 눈에 확 띄지만,

‘36.5도’ 나와 비슷한 체온만으로 곁에 머무는 이들은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당연하지 않지만 곧잘 당연한 것들로 취급되는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오고 가며 눈인사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한 번은 나 자신도 납득되지 않는 실수로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그럴 만했으니 그랬겠죠’라며 이유를 묻지 않던 회사 선배가 있었다.

파묻히듯 속상했던 기분이 조금 뭉근해졌다.


‘대리님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뽑기 위해 주말 동안 뽑기 좀 했다’며 수줍게 인형을 건넨 회사의 아르바이트 생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회사로 꽃을 보낸 친구가 있었다.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삶의 온기를 더해주는 건 의외로 그런 사소한 위로와 뜨겁지 않은 사람들의 체온이었다.


그런 소중한 것들이야 말로 꼼꼼하게 신경 써 살피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떨어진 자리로 찬 바람이 들어야 뒤늦게 알아챈다.

마치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에 이미 내렸다 녹아버려 후드득 물로 떨어지는 눈처럼 말이다.


#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눈 오는 장면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보다 여유롭게 밖에 나가 노는 시간이 많아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내가 애정을 가지고 눈을 보기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때 난 혹시 일기예보에서 희박한 확률로나마 ‘눈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면 온통 마음이 들썩들썩하곤 했다.

수시로 밖으로 나가 눈이 오는가 확인했고, 밖에서 들어오는 엄마 아빠에게 매번 ‘눈의 안부’를 묻곤 했다.

창밖으로 ‘와아!’하는 친구들의 소리라도 들릴 때면 부리나케 튀어나가 내려오는 눈을 맞이하곤 했다.

뱅글뱅글 돌며 두 팔을 활짝 펼쳐 눈 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참 열심히 였다.


그래서 당부하건대, 그때처럼 조금은 애쓰고 노력해 주었으면 싶다.

힘든 자리를 돌아보며 일어나지 않을 ‘만약’을 떠올리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대신,

익숙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들로 자꾸만 자꾸만 시선을 옮겨 두었으면 싶다.


그런 게 퍽 괜찮은 아주 멋진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디 좋은 날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은 정말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조금만 마음을 써도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수 있기에.

왕처럼 거창히 행복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건 아주 가끔 이어도 충분하다.

그저 담담하게 하루하루가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자주 일상의 많은 것들에 행복해 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 좋은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좋은 삶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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