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에 똥 싸는 공무원 네 번째 이야기
이 이야기는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응가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내용이 표현되기 때문에 읽으시는 동안 마음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평소 비위가 약하시거나 더러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저는 지방대를 다녔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통학했습니다. 아침에 강변역에 있는 테크노마트 앞에서 스쿨버스를 탔습니다. 그날은 버스를 타자마자 똥이 마려웠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 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창문을 내다보니 주유소가 보였습니다. 기사 아저씨에게 배가 너무 아파서 잠시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기사 아저씨가 스쿨버스를 세우고 저를 내려주었습니다.
저는 주유소 화장실을 향해 달렸습니다. 주유하는 직원분께 죄송하다고 소리친 것 같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에 앉아 마자 볼케이노가 되어 똥을 분출했습니다. 그런데 급체를 했는지 오바이트도 함께 나왔습니다. 정말 거의 동시에 똥과 오바이트가 같이 나왔습니다. 뿌지지직! 우웩! 두 액션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저는 변기 휴지통을 붙잡고 오바이트를 하면서 똥을 쌌습니다.
마치 뚜껑이 위아래 달린 샴페인을 딴 것 마냥 콜라캔을 힘차게 흔들고 위아래 뚫은 것처럼 박력 있고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정말 너무 개운했습니다. 급체가 순식간에 나았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뒤처리를 하고 스쿨버스로 돌아갔습니다. 아침 스쿨버스에는 학생들이 대부분 잠을 자기 때문에 저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썼던 것 같아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날 스쿨버스를 세워주고 똥을 쌀 수 있게 배려해 주시면 기사님께 다시 한번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날 바지에 똥을 싸지는 않았지만 스쿨버스를 타자마자 똥을 참으며 괴로워했던 시간과 주유소 화장실로 달려가 거칠게 똥과 오바이트를 한 날로 오래도록 잊히지 않습니다. 뿌지지지직! 우웩!!!
대학생 때 똥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도 평범한 대학생은 겪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저는 미대를 나왔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예체능 대학은 특이하게 군대문화가 있었습니다. 배우 배두나도 대학에 들어갔더니 운동장을 뛰라는 군기문화가 맘에 안 들어 자퇴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시대라면 정말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하지만 밀레니엄 학번이라고 불리는 2000학번일 때만 해도 예체능 대학에는 그런 폭력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의 학교는 ‘집합’이라는 이름으로 선배들이 후배들을 불러서 '엎드려뻗쳐', '바닥에 머리 밖기' 등을 시키거나 빠따를 치곤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도 양아치였지만 대학교 때는 정말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놈이었습니다.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집합’이 걸린 날이었습니다. 3학년 학생회 선배들이 1, 2학년을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우리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는 말, 꿈이 없냐는 말, 뭐 그 따위 어쭙잖은 개똥철학 같은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린 고등학교 운동장 조회시간처럼 줄을 맞춰 서서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저도 가만히 서있었는데 평소 저를 안 좋게 봤던 한 학년 위 남자선배가 저를 부르더니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왜 건들건들해? 너 뭐야?”
저를 보고 왜 건들거리냐고 말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제 동기들은 재수생이 많았고 바로 1년 선배들은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온 애들이 많아 서열정리가 애매하긴 했습니다. 집합을 시킨 학생회 선배들과 저에게 시비를 건 선배도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연달아 퍼부었습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기다리던가 해야지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 놓았습니다. 더군다나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들이었습니다. "너 뭐야?" 같은 질문은 정말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답할 수 있는 질문 아닌가요? 제가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키가 큰 학생회장이 왜 대답을 안 하냐고 위협했습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덩치 큰 학생회장이 소리를 지르면서 저에게 발길질을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반사적으로 오른손 주먹으로 그 학생회장 아구창을 날렸죠. 전광석화같이 빨랐습니다. 순간적으로 집합장소는 엉망진창 패닉상태가 됐습니다. 제가 학생회장 아구창을 날리자 놀란 학생회 남자선배들이 저에게 달려들어 저를 다른 교실로 저를 끌고 가 칠판 쪽으로 밀쳤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당황한 선배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또 어쭙잖게 소리쳤습니다.
“너! 너! 앞으로 너 건드리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거야!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너! 너! 싸움 잘해?”
뭐 이런 얘기를 계속했고 저를 때렸던 학생회장도 흥분한 체로 씩씩 거리며 저에게 싸움을 잘하냐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로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똥이야기는 안 하고 서론이 너무 길어지죠? 조금만 참으시면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 나옵니다. 그래도 선배들에게 지성이라는 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는 끌려가면서 얻어맞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은 저를 강의실 칠판 쪽으로 밀치기만 했지 전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만약 제가 거기서 선배들에게 몰매를 맞았다면 저는 더 영웅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비인격적인 집합문화에 홀로 맞서 학생회장과 맞짱을 뜨고 비열한 학생회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한 의로운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학생회는 제가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을 막았던 것입니다.
대신 1, 2학년 남자, 여자 모두에게 머리를 박게 하며 저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습니다. 아무튼 어수선하게 집합이 끝나고 1, 2학년 모두 풀려났습니다. 저는 따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다른 1, 2학년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 구석에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도착하니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했습니다. 저는 영웅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나쁜 선배들은 저의 쿠데타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에도 집합을 걸겠다고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저 때문에 동기, 후배들이 주말에 서울도 못 가고 쉬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1, 2학년만 모인 반란 모임이 끝난 후 친한 동기, 후배들과 함께 호프집에 갔습니다. 많이 우울했습니다. 그때는 자취를 할 때였는데 집에 혼자 있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가족 같은 같은 과 여자후배 자취집에서 잠을 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배는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더니 허락해 줬습니다. 그때는 우린 정말 순수했습니다. 성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 자기 싫어서 가까이 살고 있던 편한 후배 집에 가서 잔 것입니다. 후배는 침대에서 자고 저는 바닥에서 잤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갔습니다. 저는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화장실에 나온 후 후배와 몇 마디 인사를 하고 저는 제 집으로 갔습니다. 훗날 여럿이서 모여 그날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푸다닥 파닥 소리를 내며 불꽃놀이 하듯이 똥을 쌌다며 창피를 주더군요. 여자 후배 집에서 각자 잠을 잘 자고 아침에 똥을 싸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참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비 오는 어느 날 친구들이랑 밤늦게까지 놀다가 너무 피곤해서 자취방에 들어왔는데 몇 분 뒤에 친구가 우리 과 후배여자를 제 방에 던져놓고 갔습니다. 우리 과는 정말이지 한 가족 같았습니다. 디자인과는 컴퓨터 그래픽, 목업, 자료조사, 스케치 같은 과제가 늘 쌓여있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몇 년 동안을 전공실에서 계속 같이 살다시피 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야식을 계속 함께 먹습니다. 야간 편의점알바를 했던 후배는 새벽 알바가 끝나고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갖고 와서 같이 먹었으니까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면 우린 식구였습니다. 아무리 식구라지만 혼자 사는 남자 자취방에 여자후배를 던져놓고 가는 건 서로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비가 와서 그냥 제 방에서 자고 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혼자 있는 것보다 심심하지 않고 여자와 함께 방에서 잠을 자는 게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는 방바닥 구석에서 잠을 잤던 것 같고 저도 너무 졸려서 한쪽에서 잠을 잤습니다. 후배에게 이불을 덮어줬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니 후배도 잠을 깬 것 같았습니다. 서로 멀뚱멀뚱 얼굴을 보는데 조금 어색하더군요. 그래서 후배에게 잘 가라고 말했습니다. 후배는 뭔가 뚱하고 화난 표정으로 집에 갔습니다. 그래도 아침밥이라도 챙겨주던가 배웅이라도 했었어야 했나 싶습니다. 그때 우리는 참 순수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바지에 똥을 싼 사건은 아니군요. 그래도 대학 시절 풋풋했던 제가 생각나는 추억입니다. 보너스로 친구집에서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데 오징어를 구웠습니다. 젓가락으로 오징어를 구웠는데 젓가락이 불에 달궈져 뜨거웠습니다. 젓가락을 만지자 깜짝 놀라 방귀를 뀌었습니다. 친구들이 어찌나 웃던지 아주 창피했습니다.
저에게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학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춘천에서의 대학생활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모교를 찾아갑니다. 그때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작업을 하고 매일 놀았던 우리들의 찬란한 봄날의 젊은 시절이 아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