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_나의 마지막 사랑을 찾았다(last)
요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 무슨 작가라도 된 모양으로 태블릿에 키보드를 붙이고 탁탁 탁탁 쓰고 있다. 노트북도 있는데 굳이 굳이 생각날 때마다 태블릿을 들고 다니면서 쓰고 싶어서 멋 좀 부리고 있다.
참 희한하지.. 어릴 때는 한 자리에 진득하니 앉아서 책을 보는 것이 무척 힘은 일이었다. 그래서 독서와는 취미가 멀었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좋아해서 티비를 그렇게 많이 봤었고 비디오를 많이 봤었다.
그리고 제일 못하고 하기 싫은 과목은 체육이었다. 달리기는 전교에서 꼴찌였다. 심지어 내가 뛸 때 선생님은 뛰는지 걷는지 알 수 없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우리 때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 체력장을 했어야 했는데 달리기가 제일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100미터를 30초 가까이 뛰어서 선생님은 한번 떠 뛰게 해 주셨었다.
그런데 불혹이 넘은 내 나이에 몇 년째하고 있는 취미 중 하나가 10킬로미터 마라톤이다. 매년 1번 이상은 대회에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뛰고 싶어서 출전한다. 아무 생각 없이 뛸 때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7~8킬로쯤 뛰었을 때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경험을 한번 한 나는 그 뒤로 계속 뛰게 되었다.
참 아이러니 하지.. 글 읽는 것과 거리가 멀고 달리기와 거리가 멀던 내가 지금은 두 가지의 취미를 다 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그럼 글을 마저 적어 볼까나
원피스를 입고 높은 힐을 신고 스틱기어가 달린 나의 애마를 몰고 가게 앞으로 갔다.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쁘게 말하려고 긴장한 탓에 잔뜩 꾸민 목소리로
“여보세요. 저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나오세요”
“아…네..”
나는 가게 안에 들어가기가 약간은 부끄러웠다. 왜냐면 평소에 치마를 잘 입지도 않고 힐도 잘 안 신는데 이렇게 꾸민 내 모습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냥 컴컴한 차 안에서 첫 대면을 하고 싶었다. 공감하시는 분이 계실라나 모르겠다.
5분, 10분, 20분. 뭐지 왜 안 나오지… 안 나왔다. 성격이 급한 나는 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야! 여자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에이씨 그냥 가버릴까??’
28분이 되었을 때 나는 출발해 버릴 작정으로 껐던 시동을 다시 켰다. 그 순간 두 손에 커피 커피를 들고 그 사람이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 불이 들어왔고 얼굴이 환하게 보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손님이 갑자기 너무 많이 와서 직원들끼리 처리를 못해서 좀 도와주고 왔어요”
“아.. 네.. 1분만 늦으셨으면 저 갈뻔했네요 하하하”
“죄송해요”
“제가 오늘 어디 좀 들렀다 온다고 옷차림이 이래요 일부러 꾸민 건 아니에요… 어디로 드라이브하고 싶으세요? 네비가 없어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셔야 하는데 저 길치예요 그래도 운전은 잘해요”
나는 약간의 하얀 거짓말을 했다. 너를 보려고 아침부터 꾸몄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깐!
“네 그럼 일단 저 쪽으로 갈까요?”
그 사람은 차 문이 열렸을 때 빼고는 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손을 허벅지 밑에 고정시킨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0센티에 90킬로가 넘는 사람이 작은 아반떼 조수석에 앉아 내 얼굴도 못 보고 웅크리고 앞만 보고 있는 모습에 나는 그만 좀 전에 짜증은 없어지고 귀여움에 물들어 버렸다.
“그럼 출발할게요”
몇 분을 달렸을까?? 남자는 여전히 앞만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되게 멋있으세요 “
‘ㅡㅡ;; 갑자기??? 어디가?? ‘ 나는 속으로 무슨 말인지 생각했다.
“네?”
“예전에 가게 오셨을 때 말은 해 봤지만 전화 목소리는 처음 들었잖아요? 목소리가 너무 예쁘셔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요? 하하하 “
“그리고 제가 사실 로망이 있었는데요. 치마 입은 여자분이 운전해 주는 차 옆에 타보는 게 제 꿈이었어요. 좀 이상하게 들리나요? 그냥 로망이었어요”
“그럼 오늘 꿈을 이루신 거네요? 하하하”
“아까 전화부터 계속 깜짝깜짝 놀라고 있어요 “
대화는 순조로웠고 재미있었다. 사실 나는 와일드한 운전을 하는 드라이버다. 하지만 그날은 최대한 얌전하고 천천히 운전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맨 처음 가게에서 봤을 때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보는 순간 뒤에서 후광이 빛났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보던 날 차문을 열었을 때 이미 원피스를 입은 예쁜 모습의 여자와 스틱기어를 보는 순간 반했다고 했다.
그렇게 와일드하게 드라이브를 마치고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인 6월 7일 저녁 수변공원에 갔다. 노래하는 분수가 있는 공원이었는데 정시에 맞춰 음악과 멋진 분수쑈가 펼쳐졌다. 나는 촌사람이라 그런 건 처음 봤었다. 속으로 신기하고 좋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많이 크지 않은 공원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남자는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또 이야기를 하며 한 바퀴를 돌고 남자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뭐지.. 방광이 작나??‘ 생각했다. 또 한 바퀴를 더 돌고 이야기도 할 만큼 하고 밤도 깊었고 차로 향했다.
그가 수줍게 말했다.
“제가.. 용기가 있었다면.. 손을 잡았을 텐데 용기가 없어서 손을 못 잡았어요”
나는 귀여웠다.
“그냥 잡으면 되죠!”
나는 남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엄마야”
남자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옹알이를 했다.
새침하고 도도하고 차갑다는 말을 많이 듣는 내가 그런 발칙한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수줍어하는 덩치 큰 남자의 귀여움에 내가 리드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것 같다.
그리곤 얼굴이 빨개져서 말도 없이 앞만 보고 갔다.
몇 번의 만남 뒤 남자는 다시 용기가 없어서 포옹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했고 나는
예상을 하셨겠지만 ”안으면 되죠! “ 하고 내가 안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어머 “하며 움찔했다. 귀염둥이였다. 36살의 적지도 않은 나이에 그렇게 귀여울 수가!
그리고 나는 차에 타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다음에 만나면 우리 뽀뽀해요!”
이 말을 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로 뛰어갔다.
만나는 한 달 내내 얼굴을 볼 때마다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게 아지랑이 같은 것이 속에서 꼬물꼬물 거리고 설레었다. 그리고 1년을 사귀고 우리는 결혼했다.
올해로 14년째다. 살아보니 이 남자는 그냥 순수한 사람이었다. 변함없는 순수한 남자..남자는 가끔 이야기한다.
“자기는 진짜 이상해 어떻게 살이 쪄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 “
“뭔 소리야 20킬로나 쪘는데!! ”
“살쪘다고 안 예쁘나? 살찐 거는 찐 거고 예쁜 거는 예쁜 거지”
하루는 싸우고 하루는 알콩달콩하고 또 하루는 싸우고 또 알콩달콩하고 오늘도 이렇게 시간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