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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멜랑쥐 Jan 01. 2025

카페의 하루

오늘은_나의 마지막 사랑을 찾았다.(1)

오늘은 2015년 여름 오픈했을 때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기억을 주섬 주섬 모아 본다.


2015년 6월 14일이었다. 꿈만 꾸고 있었던 일을 그냥 저지르고 말았다. 나의 예쁜 커피숍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13년 정도 쉬지 않고 한 가지 일만 했다. 물론 이직을 여러 번했고 그때마다 더 나은 나의 커리어를 가지게 됐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다녔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그러다 보니 지치고 힘들었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이것이 나의 진짜 꿈이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여동생의 꼬임에 나는 현혹(?)되었고 과감하게 회사를 관두고 커피숍을 차리겠다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만약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하는 세무 회계일은 재취업이 쉬우니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 새로 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실 그때 커피 붐이 일어나서 너도 나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겠다고 학원을 다녔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여차 저차 하여 자격증을 따고 같이 배운 동기생이 카페에 취직을 했다기에 커피숍도 구경하고 메뉴도 구경하고  가능하다면 사장님께 가게 오픈에 대해 궁금한 것도 이것저것 물어볼 겸 학원 동기생 10명 정도가 우르르 구경을 하러 갔었다.


2010년 겨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영화에서 본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을 법한 가게가 있었다. 너무 아늑하고 예뻤다. 그리고 메뉴판에 있는 커피는 처음 보는 커피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탈리아 커피 중에서 ‘그라니타 디 카페’라는 메뉴를 주문했고 다른 친구들도 각자 처음 보는 커피들을 주문하기 바빴다. 우리는 그렇게 주문을 마치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안경을 낀 키가 큰 남자분이 우리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말을 걸었다. 인사를 건네고 친절히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사장님은 우리 동기가 쉬는 날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제야 우리끼리만 날짜를 정하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명 중 누구 하나도 생각을 못한 것이었다. 30대였던 우리 모두 참 어설펐다.


곧이어 우리가 주문한 커피들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분의 서빙으로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사장님은 우리 동기생 친구가 없어도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하고는 궁금한 거 있으면 도움을 주겠다며 친절히 말씀하셨다. 눈치만 보고 있던 우리는 마시는 방법을 설명해 주시는 사장님의 말이 끝나자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셔보고는 커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리는 처음 보는 이 커피를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레시피가 궁금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레시피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레시피는 얼마든지 모두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레시피가 제일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라니 귀가 쫑긋해졌다. 커피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한참을 역사 수업과 커피 수업과 장사의 노하우 수업과 기타 등등 수많은 지식이 쏟아졌다. 우리는 모두 받아 쓰기에 바빴다. 이렇게 모두 가르쳐 줘도 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장님은  커피를 진심으로 하고 싶다면 모두 가르쳐드리고 싶다고 했다.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모두를 알려주는 듯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론 공부와 약간의 반복연습과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의 실력만 갖고 바로  커피숍을 차리려고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장사를 10년 이상 하신 사장님 눈에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까 싶다.


사장님은 친절하셨다. 하지만 단호하셨고 현실적이고 뼈 있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듣고 있다 보니 학원에서 배우고 들었던 달콤한 말과 상반되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욱하기도 했고 속으로 나는 다르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사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돼묻기도 하고 사장님이 알고 있는 지식에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나름 확신하며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모르는 척 되물어 테스트도 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겁 없는 하룻강아지였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부푼 꿈만 있었다. 민간 자격증인 바리스타 자격증 합격이라는 종이가 성공을 보장해 주는 증거물 같은 착각 속에서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 그랬다.


사장님께 이야기는 계속 됐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그래도 하시려면 제가 도와 드릴게요 이 분야는 사기꾼이 많습니다. 최악의 결과는 돈도 잃고 꿈도 잃고 시간도 잃습니다.”

“체인점을 선택하시던지 개인가게를 하시던지 무조건 여러 군데 물어보고 알아보고 시간을 투자해서 알아본 후에 그리고 커피 실력이 갖춰진 다음에 신중히 결정하세요 급하면 안 됩니다. 시작하면 투자금 회수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깨에 뽕이 가득 들어간 채 가게문을 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뽕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생각이 더 들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났고 처음 본 우리에게 진심으로 모든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사장님이


잠시만요

하고는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 나에게 건넸다.


휴대폰 번호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쪽지를 준 것이다.


“여자분에게 번호를 묻는 것은 실례니까 제 번호를 드릴게요 전화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뭐지? 어머?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금 어색해서 ”네 “하고는 가방에 넣었다.


가게를 나와서 언니들이 본인들은 눈치를 챘다나 사장님이 나를 보는 눈빛이 반한 것 같았다나 어쨌다나  나는 내 연애에 대해서는 좀 무딘 편이다.

나는 욱하는 마음에 허점을 찾으려고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사장님의 눈빛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오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혼자 소설을 쓰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연애를 안 한 지 6년이나 됐을 때 이런 일이 생겨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장님은 만인의 연인??? 누구에게나 쪽지를 주는 건 아닐까?? 순진한 내가 걸려들면 안 될 것 같은데?? 뭐 친해지면 장사 시작하기에 도움 정도는 받기 쉬울 수는 있지 않을까??‘


그날 밤은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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