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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름 Oct 14. 2024

프롤로그) 아내에 대하여 쓰기로 하며 한 결심



내 아내에 대해 무언가를 써보자는 생각이 든 건 고리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을 때였다. 고리키는 만났던 사람들을 거리를 두고 관찰했고 미사여구 없이 그들의 모습과 행동을 썼다. 오래전에 머나먼 땅에 살았던 보통 사람들, 이미 흙이 되어 사라진 지 오래일 그 사람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놓은 글에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그건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과는 조금 다른 질감이었고, 그림, 사진, 흑백영화 같은 매체에 담긴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과도 분명히 달랐다. 그 글에는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아함과 답답함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너무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감상임을 잘 알지만 어떤 사람을 자세히 보고 그 사람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에는 따뜻함이 담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일방적인 시선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볼 때 그 대상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가만히 보다 보면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적어도 이렇게 다르다니 재미있구나 하고 웃을 수 있다. 누구든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시선에 무언가 불순물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연애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아직도 신혼 시기를 지나는 내가 아내에 대해 적는다면 이미 상당히 치우친 글이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불 보듯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사적인 애정 고백 따위, 편지에 적어 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연단에 오르자마자 돌아서 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고 있는 연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서둘러 고백해야겠다. 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고 때로는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할 테고, 운이 좋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한들 어떤 식으로든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글이 아내를 향한 연가가 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아내는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므로 내 글의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도 당연히 모른다. 만약 내가 이 글을 어딘가에 발표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아내에게 전부 보여주고 허락을 받을 생각이다. (허락을 받아서 여기에 올리고 있다)


나는 아내를 관찰하고 때로는 아내와 있었던 일을 떠올려 가며 아내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일방적인 시선으로 가만히 지켜보려는 것이다. 왜 그럴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앞서 말했듯 그저 책을 읽다가 떠올랐을 뿐이다. 


그녀에게 치우치지 않고서 어찌 그녀와 평생을 하겠다고 다짐했겠는가. 객관성을 입에 담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저 스스로 비열하게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그녀는 이 글에서 타자로 존재하게 되므로 나에 의해 대상화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그녀에 대해 쓴다. 이 글에서 ‘나’는 아내를 ‘나’ 이외의 다른 특정한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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