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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름 Oct 21. 2024

오늘 뭐 할 거냐고 묻지 말아 줘

다소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그다지 자신 없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어쩌다 덥석 실행에 옮겨 버린 사람이라면, 반드시 후회라는 걸 하게 된다. 자신에게 확신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꽤 많이 발생한다. 

아내는 한 달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걸 약간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퇴사 자체를 후회한다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어떤 조건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모양이다. 아쉬움이 남는다고 해서 어떤 결정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결정이 옳았다고 해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견디는 수밖에. 

우연히 굴러 들어간 회사를 13년 가까이 다녔던 아내다. 어쩌다 보니 그 회사에 눌러앉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를 다녔든 다르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각자 견딜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참아내며 10년 넘게 한 회사에 다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것들을 참고 견뎠던 이유는 초라하지만 안정적인 월급 그 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에 말이 잘 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업이나 일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가 없다는 점이 같았기 때문이다. 직업은 돈을 버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 그건 하나의 가치관으로서 어떤 사람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생각이 다르다면 같이 가기 쉽지 않다. 


아내는 처음으로 맞이한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건 참으로 의외다. 내가 알던 아내는 활발하게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흥미를 느낀 것은 앞뒤 조건 따지지 않고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내. 식물이 푸릇하고 여린 잎사귀를 내밀면 탄성을 지르던 아내. 퇴사 후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플로리스트 과정을 등록한 아내는, 그러나 전처럼 꽃을 들고 돌아오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던 회사의 사람들이나 일 따위는 모두 잊고 녹음이 짙어지는 자연에 묻혀 녹색이 될 줄 알았는데……, 해가 중천일 때도 집에 있기 일쑤였다.

나는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부러워하는 마음을 반쯤 섞어서 아내에게 오늘 뭐 할 거냐고 묻곤 했다. 그건 일종의 축하 인사 같은 말이었다. 이 아름다운 날 이 아름다운 시간을 당신은 무엇으로 채울 텐가? 그 행복한 계획을 들려주겠소? 처음에 아내는 간단하게 몇 가지 일정을 말해주거나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지. 오늘 어떤 하루가 될지 아직 잘 모를 수 있지. 오늘 뭐 할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에 담긴 여유와 상상의 미학. 그 말조차 나에겐 아름다운 계획으로 들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내는 나의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지 않거나 끝을 얼버무렸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나에게 오늘 뭐 할 거냐고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진심이라는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나는 아내를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반년 정도 휴직을 경험했던 나는 그 난감할 만큼 텅 빈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기를 매일 꿈꾼다. 지금 이렇게 괴로움을 견디고 있는 건 순전히 그 시간을 위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기 위해 지금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거다. 그 정도로 그 텅 비어 있는 시간 속에서 마음은 충만했고 진정 살아있다고 느꼈다. 

물론 아내의 걱정이나 불안이 이해되는 면도 있다. 우리는 내세울 만한 무엇도 쌓아 올리지 못한 채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데다가, 아내는 13년의 커리어를 훌렁 벗어 버리고 대안 없이 빈 몸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했던 일과 관련된 어떤 일도 다시 할 생각이 없는 아내는 원점에 선 기분일 것이다. 얼마간 허무하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는 것도 이해된다. 휴직 시기의 나와 지금 아내의 마음은 많이 다를 거다.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과 돌아갈 곳 없는 방랑이 같을 수 없으니. 

그렇다고는 해도 십여 년 만에 처음 맞는 온전한 휴식이 아닌가.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생각하지 않고 느리고 게으르게 녹아 있어도 되는 거 아닐까.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걱정과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살게 되었나.

아내는 나이 때문인 것도 같다고 했다. 이제 사십을 지나고 있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확실히 전해진다고. 전처럼 활기가 생기지 않고 별 거 하지 않아도 금방 지치고 피곤하다고. 그래서 아내에게서 생기가 빠져나가 버린 건가. 생기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온전히 쉬지 못하는 건가.


확실한 건 아내가 생각만큼 백수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의외여서 놀랍고 아내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아서 안쓰럽다. 같은 결의 불안을 함께 가진 우리. 누가 심어 놓았는지 몰라도 깊이 박힌 그것. 각자 가지고 있는 그것을 꺼내어서 한 군데 모아 두고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은연중에 아내가 쉬는 동안 다음 직업을 준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아내가 잘하는 것들, 아내가 잘할 것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아내를 북돋아 주려던 것이지만 아내는 조바심이 난다.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성급하게 뛰쳐나왔나, 하고 후회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그 마음에 솔솔 부채질을 한다. 오늘 뭐 할 거냐는 물음이, 오늘 뭐라도 해,라는 강요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는 참지 못하고, 묻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만 놀자니 미안하기도 하다. 제대로 놀지 못하니 더 미안해진다. 

이렇게 된 걸까? 

어찌 된 일이든, 그래선 안 된다.


나는 아내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안 뒤로 아침 출근길에 오늘 계획을 묻지 않는다. 대신 퇴근 후에 묻는다. "오늘은 뭐 했어?"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아내의 얼굴에서 겸연쩍은 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을 때, 당당하게 아무것도 안 했노라 말할 때쯤 되면 나도 내 안에 깊이 박힌 것을 꺼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내가 우리 둘 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자고 말해주면 얼마나 기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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