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온 택트 강의인가?
코로나 이전 대규모 강의를 가본 적이 있는가? 대규모 강의가 아니라 대학 다닐 때 학생이 많은 대강당에서의 강의를 생각해도 좋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강의장에서는 강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그나만 옆으로 스크린이 준비되어있으면 흐리게나마 얼굴을 마주 할 수 있었다. 혹여 마이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큰 스크린에 뿌옇게 나온 강사의 얼굴을 마주 보고서 좋은 강의였다고 돌아왔다. 물론 강사의 에너지와 현장에서의 감동은 오롯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규모 강의 현장의 모습은 대체로 이랬다.
대규모 강의가 온 택트로 넘어오면서 강사의 세세한 표정 하나까지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다. 잘 안 들리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해주듯 선명하게 들린다. 강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이를 케어하면서 들을 수 있고, 자다가 바로 일어나서도 들을 수 있다.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들을 수도 있다. 청중의 얼굴은 청중의 자유의지에 따라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다. 질문이 있으면 채팅을 통해서 바로바로 질문할 수 있고, 강사와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 소극적이어서 현장에서 말을 잘 못하던 청중들도 온 택트 상에서는 좀 더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다.
청중들도 처음에는 온 택트 강의가 낯설었다. 강사도 청중도 처음 접하는 프로그램을 배워야 했다. 어떤 기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어서 부영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모두가 '빨리 오프라인으로 돌아가 얼굴 보며 수업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온 택트 시대가 한 달, 두 달이 되고 프로그램 사용이 점차 익숙해지자 청중은 온 택트 강의의 편리함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건 어느 나라에 있건 원하는 강의를 신청해서 들을 수 있다. 엄마들은 아기를 돌보면서 강의를 듣겠다는 엄두도 못 냈다. 지금은 아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배울 수 있다. 아기가 옆에 있어도 나는 충분히 공부가 가능해진 이 좋은 세상을 알아버린 것이다. 강의장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에 다른 업무를 볼 수가 있게 되면서 시간 활용이 더 쉬워졌다. 온 택트 강의의 편리함이 서서히 청중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한 가전제품 회사에 컴플레인이 들어왔다고 한다. " 작동할 때 소리가 나는 게 혹시 고장 난 거 아닌가요?" 이 말을 들은 상담원 직원이 "이 제품은 모터가 있어 작동 시 모터 소리가 납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반품처리해드리겠습니다." 하고 답변했다. 그 고객은 "고장 아니면 괜찮아요. 이미 이 제품의 편리함을 알아버려서 그 편리함을 놓을 수가 없네요." 하고 답했다. 사람의 습성은 편리함을 한번 알아버리면 편리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위드 코로나가 오더라도 강의 시장은 온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청중의 요구에 따라 강의 시장도 따라갈 것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