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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y 11. 2022

루이비통 가방보다 에코백이 더 좋은 걸

내가 사는 골드코스트에는 퀸즐랜드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가 있다. 우리 집에서도 30분가량 차로 가야 해서 자주 가진 못하고 시골 사람 서울 구경하듯 마음먹고 가끔 놀러(?) 간다. 이름도 거창하다. Pacific Fair.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갈 때마다 호주 사람보다는 중국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이 쇼핑센터에는 명품관이 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 티파니, 롤렉스 등등... (내가 아직 모르는 명품관도 많아 다 열거를 못하겠다.)


내가 가끔 이곳에 놀러 오는 것은 그동안 쌓아둔 쿠폰을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소진하기 위함이다. 10불, 20불 모은 쿠폰은 어느새 50불이 되어 없어지기 전에 뭐라도 필요한 물건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에 놀러를 왔다. 난 열심히 50불을 채워볼 물건을 어디서 사나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루이비통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루이비통 가방을 크로스백으로 멘 중국 할머니가  고객용 카우치에 앉아 계신다. 앉아만 계신데도 포스가 남달라 계속 쳐다보게 만든다.


염색이 고르지 못하게 되어 얼룩덜룩, 흰머리가 들쑥날쑥한 머리는 야채단 묶음에서나 보는 빨간 고무줄로 대충 묶으셨고, 알 수 없는 화려한 무늬의 올이 살짝 풀려 한 가닥 빨간 실이 흩날리는 폴리 스카프 밑으론 핑크색 가디건이 자리했는데, 색감이 예술이다. 옛날 장롱 안에서나 보았던 핑크색 보자기와 흡사 똑같은 색감의 가디건 위엔 노랗고 빨갛고 하얀 꽃들이 생소하게 떠다니고 있다. 그 밑으론 검은색 흑장미가 현란하게 수 놓인 몸빼바지가 출렁출렁 출렁이고 있고, 그 출렁이는 몸빼 위로 루이비통 가방이 낯설게 안착해 있다. 야무지게 신으신 흰색 양말은 나이키 운동화 안에 고이 감싸져 있다. 루이비통만이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오늘 사신 가방인가 보다. 아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할머니는 외계인 눈을 닮은 렌즈 세 개가 달린 아이폰으로 누군가와 우렁찬 중국어로 통화를 하고 계신다.


어쩌면 저렇게도 부조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루이비통을 뺀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35년 전 시골에서 본 우리 할머니의 모습인데, 루이비통이 그 정감을 마구 해치고 있었다. 난 곧 종잇장이 될 운명의 50불 쿠폰을 물건으로 바꿔보려고 이 멀리까지 나왔는데, 저 할머니는 양손에 루이비통을 이고 지려고 중국에서 오셨나 보다 싶었다. 왠지, 부러운데 안 부러운, 부러워해야 맞을 것 같은데 안쓰러운 이 느낌은 뭐지?


이 중국 할머니의 포스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내 입가를 스친다. 뭐, 돈만 있고 패션감 없는 중국 사람을 비하하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냥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시골 촌뜨기가 서울에 상경해서 멋 좀 부려보려고 처음 파마를 하고 학교에 나타났을 때, 대학 선배 언니가 날 보고 '널 보니 난 절대 파마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던 말도 생각나고, 대학교 때 처음 번 과외비로 백화점에 가서 내 체형과는 맞지도 않은 현란한 원피스를 사 입고 왔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너무 안 어울린다며 타박 주시던 생각도 나고, 묘하게 나를 닮은 이 중국 할머니가 날 웃게 한다.


50불 쿠폰을 물건으로 바꿔보겠다고 이 멀리까지 달려 나온 나나, 루이비통과 몸빼가 일궈낸 부조화의 조화를 만끽하고 계신 그 할머니나 왜 이렇게 웃긴가. 이 둘이 마주한 그 시간이 묘하게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  


물건은 우리를 채워주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가진 물건이 날 더 초라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물건이 나에게 종속되어야지 내가 물건을 쫓아가면 그런 일이 생긴다. 50불어치 물건을 쫓아 멀리까지 간 나나, 루이비통을 쫓아 중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오신 할머니나 모두 초라해져 버렸다.


그날 본 루이비통은 솔직히 말하면 싸구려 장바구니만도 못해 보였다. 물건은 나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지 내가 물건에 종속되어 버리면 명품도 가치를 잃고 만다.


가질  없는 자의 폄하도 아니고, 여우의  포도도 아니다. 정말  루이비통은 암만 봐도  예쁘다. 그냥 올케에게서 선물 받은 무지천 에코백이 훨씬  예쁘다. 이유는  하나. 에코백이 나한테 훨씬   어울리기 때문이다. 내가 맘대로 어딜 가지고 다녀도  편한, 뭐가 묻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에코백이 루이비통보다  예쁘다.


오늘의 희열카드 - 루이비통, 에코백 카드





<처음 사진: 루이비통 로고>

<나중 사진: 올케가 준 에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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