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보려고 하면 다친다. 덕 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자.
덕을 주며 살아가는 사이
나는 ‘나이가 든다.’는 말보다 ‘세월을 쌓아간다.’는 말이나 ‘경험이 축적된다.’는 말을 더 선호한다. 부부가 함께 세월을 켜켜이 쌓아가며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더하는 지혜를 쌓는다면 몇 번이 될 수도 있고, 한 번도 안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결혼생활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마지막 구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가사가 나오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라는 ‘그레이스 싱어즈(Grace Singers)’가 부른 노래가 있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인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척이나 크다. 처음에는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남녀가 연애시절 하루라도 떨어지기 싫어 결혼을 해서 한집에 살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애초에는 사랑으로 불타올라 의기투합하여 '사랑하는 이와의 달콤한 동거'로 시작 된 우리들의 결혼생활이... 시간이 흐르자 '저 인간 하루라도 사랑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고, 심지어는 '달콤한 동거'가 아닌 '적과의 동침'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루는 커피숍에 앉아있는데 주위에 앉은 중년의 여성들이 ‘아유. 우리 신랑은 로또야.‘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집은 부부사이가 참 좋은 집이구나.‘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에 이어나갈 말을 가만히 한번 들어보았다. ’응? 정말? 신랑이 그렇게 대단해? 그렇게 좋아?‘ ’아니. 절대 안 맞아. 로또 숫자가 하나도 안 맞듯이 나랑 단 하나도 맞는 게 없어.‘ ’호호호. 언니. 난 또 무슨 소리라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 신랑도 로또야. 나랑 안 맞아. 살면 살수록 더 로또야. 호호호호.‘
신랑이 로또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처음에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무엇이 ‘신랑’을 ‘로또’ 반열에 올려놓고 우스꽝스럽게 만들며 희화화(戲畫化) 시키는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밖에 나와서 배우자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집에 들어가서 배우자에게 더 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란 것은 평소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근본적인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인간은 상대적인 동물이다. 상대가 바뀌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면 상대도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사고의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고, 상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고 상대를 인정해준다면 조금 더 현명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내 집안이 편안하지 않고, 배우자와 자식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상냥하게 대하지 못하고 자기 성질대로만 대하면서 바깥에서 봉사활동하고, 동호회활동하고, 사회생활하며 성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봄직하다.
퇴근 후 남편들이 만나서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부인의 흉을 보고, 부인들끼리 만나서 차를 마시며 본인 남편 흉을 보는 것은 밖에 나가면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밖에 나와서 남편과 부인의 험담을 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깔려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예전에는 내 아내도 이웃을 만나면 이따금 내 흉을 보곤 했다. 다른 집 부인이 먼저 본인 남편의 흉을 보니 내 아내도 따라서 흉을 보는 것이었다. 서로가 동질감을 형성하기에는 같은 주제로 타깃을 정해놓고 뒷담화를 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지만 굳이 그 대상으로 본인의 배우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물론 상대가 먼저 본인 남편의 뒷담화를 하는데 나는 남편 자랑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우습겠다마는 그럴 경우에는 대화의 주제를 살짝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까지 얼마나 내 뒷담화를 많이 했기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단점들이 하나 둘씩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내심 충격을 받았다. 그날 그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와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보. 내가 평소에 당신에게 많이 잘못하고 살았나보네요. 당신이 아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고쳐야 할 것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평소에 당신에게 멋진 남편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라고 하니 아내가 적잖이 당황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여보. 그게 아니라... **엄마가 자기 남편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데, 나도 같이 안하면 혼자서 민망할까봐서요. 그래서 같이 맞장구치며 이야기한 것이지 당신 평소에 잘해요. 그런 것 없어요. 언짢으셨다면 죄송해요.”
“이 세상에 이야기 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대화의 주제를 그런 식으로만 이어가면 물론 평소 쌓여있었던 스트레스야 풀릴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남는 게 있을까요? 사실 스트레스가 더 쌓일지도 모르죠. ‘같은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괴벨스: 나치의 선동가)’ 고 한 것처럼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계속해서 하면 그것이 나와 상대의 잠재의식 속에 고착(固着)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며 서로의 고칠 점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 결혼생활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당신 말씀이 백번 맞아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앞으로는 밖에서 그런 이야기는 안할게요.”
그 이후로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또 내 뒷담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내의 성향으로 봐서는 더 이상은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나 역시도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밖에서 아내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 집사람은 참 배울게 많은 여자예요. 나한테는 과분한 여자죠.’ 라고 이야기하며 내 아내의 면을 살려준다. 아내의 면을 살려주기 위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면이 더 산다.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른다.’는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도 있지 않나. ‘괴벨스’가 ‘거짓말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고,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진실을 백번 말하면 진리(眞理)가 된다.’는 말을 한편으로는 더 신봉(信奉)한다. 세상에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 스스로가 ‘현명하고, 배울 것이 많은 과분한 여자와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아내에게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살면서 부부싸움 한번 안 해보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부부싸움도 현명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 부부싸움의 발단은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경우가 90%다. 하긴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오해'도 생기지 않을 테니 감정싸움으로 번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럼 나머지 10%는 뭐냐고? 나머지 10%는 '이해를 아예 안 해서' 생기는 것이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결혼생활을 해나가며 부부가 서로에게 덕을 보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부부뿐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애를 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줄 것처럼 갖은 아양을 떨고 서로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을 하고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잡아놓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잘못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잡아놓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더 다양하게 잘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들을 보면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수족관에 키우는 물고기나 강아지, 고양이 등 여러 애완동물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경우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털이나 지느러미에 윤기가 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다양한 영양공급을 해주어야 한다. 동물과 비교해서 좀 그렇지만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다. 애완동물도 그럴진대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내 사람이 된 사람에게는 더 깊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연애할 때의 십분의 일 정도의 간, 쓸개만 빼줘도 무탈할 것이다. 한 마디로 덕을 보려고 하지 말고, 덕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매번 덕을 주는 것은 사람이기에 힘들겠지만 최소 열 번 중 다섯, 여섯 번 정도라도 덕을 주려고 하면 무탈한 결혼생활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명심하자. 우리는 늘 내가 덕을 보려고 해서 탈이 생긴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상대에게 덕을 보려고 하지 말고, 덕을 주려고 노력하자. 이후 우리 결혼 생활이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것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