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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Nov 20. 2024

이듬해 꽃 피울 눈을 봐

모르는 마음.zip #3

  엄마가 머리를 했다. 수년간 비슷하던 엄마 표정에서 낯선 미소를 보았다. 선명한 환희!


  긴 겨울 찬기운을 배웅하고 돌아선 봄 같다. 꽃 피듯 눈도 입도 활짝 웃으니 꾸깃꾸깃 접혀있던 미간이 한결 부드럽다. 엄마 표정이 춤을 춘다. 이게 뭐라고 무진장 기뻐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다. '우리 엄마가 있잖아~ 이제는 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실 거래. 처음으로 원하는 미용실을 찾아 돈 내고 머리 하셨데. 마음에 든다며 사진도 찍어 보냈어.'


  살다 보니 궂은비를 피할 수 없어 마주하고 싸워온 엄마. 자식들 안아주느라 본인 안아줄 틈이 없었나 보다. 사랑이 많은 엄마. 혹여나 스스로 사랑하는 법은 잊은 건 아닐까, 두 팔 두 다리가 바지런히 타인만을 향하니 정작 엄마 본인은 외롭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참 늦게 해 본다.


  찌푸린 미간, 피로 쌓인 눈, 체기처럼 감도는 걱정. 반복되는 일상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대로 그 자리에 눌어붙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무섭다. 묵직하게 똬리를 틀고 숨을 옥죄기도 한다. 그 단단한 똬리를 푸는 건 늘 사소함이다. 겨울 언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건 언제나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 작은 새싹이니까. 사실 사소함은 굉장한 것이 아닐까.


  엄마가 돈 주고 미용실 간 게 뭐 특별한 일이라고. 적어도 나에게는 펄쩍 뛰며 축하할 만큼 특별한 일이다. 봄꽃 보듯 벅찼다. 사소한 변화가 숨통이 되고 물꼬가 되고 희망이 되니까. 엄마는 자식을 키우면서 몇 번의 봄을 만났을까?


  고등학생 시절, 처음 내 손으로 방바닥 머리카락을 주워 버렸을 때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이고, 웬일로 이걸 치웠어?' 하며 웃으셨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참 부끄럽고 감사하다. 그렇게 드문드문 더디게 성장한 딸내미가 엄마의 변화를 발견하며 좋아한다.


  앞으로도 엄마와 함께 자주 봄맞이하자 마음먹는다. 서로가 서로의 작은 싹을 발견하고 봄볕처럼 반겨주자고.



최저 기온이 영하권에 들어섰다. 마지막 잎까지 다 떨군 발가벗은 나무들이 무채색 배경에 날카롭고 선명한 선을 긋는다. 휑한 마음에 죽었나 살았나 들여다보니 마른 가지 사이로 올록볼록 쌀알 같은 게 돋아있다. 이듬해 꽃이 될 꽃눈이란다. 전원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라 모든 것이 서툴고 새롭다. 미리 봄 준비한다고 전지를 하다가 꽃눈이 분화된 가지를 잘라버리면 이듬해 꽃을 볼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관심 두고 가까이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냥 헐벗은 가지가 아니라 이듬해 꽃이 될 가능성을 품은 가지를 보며,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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