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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Nov 27. 2024

말 못 할 이야기가 쌓이는 것은

모르는 마음.zip #4


  자신의 믿음을 다리 삼아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여러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만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믿음이 갈 곳을 잃으면 곧잘 넘어진다. 믿음에만 의지하면 사실을 왜곡하거나 가릴 위험이 있지만, 무언가를 믿는 마음은 사실을 더 나은 사실로 데려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내 안에 말 못 할 이야기가 조금씩 쌓인다. 입이 무거워진다. 속도 무거운 것 맞는데, 이상하게 공간이 생기고 바람이 드나든다. 무표정의 사람, 웃는 사람, 얼굴 구긴 사람, 등 돌린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겉으로 보이고 말하는 것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산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뻔한 생각을 이제야 마음에 새겨본다.


  외투 옷깃을 턱까지 여미는 날씨다. 우산을 써도 비바람이 가로로 불어 재끼니 배가 서늘하다. 오늘따라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워 과거에 쓴 글을 뒤적여 보았다. 그땐 어떤 이야기에 속이 뜨끈해졌나. 지금도 여전한가 궁금했다. 3년 전 겨울, <슬기로운 의사생활 2> 1화 스토리 중 일부를 적어두었길래 '아, 맞다.' 하고 무릎을 친다.






  미숙아로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원에 있었던 아이, 연우. 연우 엄마가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병원에 찾아온다. 점차 간호사들 사이에 아이가 죽자 혹시라도 의료사고 때문에 고소하려고 뭐라도 하려는 거 아니냐며 연우 엄마의 방문 의도를 경계하고 우려하기 시작한다. 혹시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긴장감 도는 연출이 한 몫했으나 나라도 저런 상황이 지속되면 덜컥 겁이 났을 것 같다. 그러다 극 중 장 겨울과 안 정원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장 겨울 : "연우라고... 작년 가을에 하늘나라로 간 아이요. 연우 어머니가 연우 보내고 한 달인가 뒤부터 계속 병원에 찾아오세요... 그때마다 저를 찾으세요.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정중하게 어떤 용건인지 물어봐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모른 척 넘어가도 되는 건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안 정원 : "연우엄마는 연우 얘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다른 의도나 용건은 없어. 아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중략) 병원 밖에서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대화할 사람이 없어... 부담되고 겉도는 얘기만 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다음에 또 뵈면 겨울이가 먼저 말 걸어드리고, 따뜻한 커피라도 사드려. 영원히 오시는 분들은 없어. 언젠간 안 오실 거야. 결국은 잊어야 하니까. 그때까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드려."


  장 겨울이 계속해서 무뚝뚝하게 대하고 간호사들이 쉬쉬하는 표정으로 경계를 표했다면, 연우엄마의 마음에 없던 원망도 생겼을 것 같다. 그러나 시종일관 최선을 보여주는 사람 앞에서 상대방도 치유받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에서 학부모의 전화를 받을 때, 별 이유 없이 긴장부터 하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책 잡힐 것이 없는지 되짚어보곤 했다. 우리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또한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보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내 좁은 이해의 폭 사이를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뜨끈한 훅을 날린다. '아, 이게 정말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구나.'하고 순순히 명치를 내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머리는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 딱 그런 느낌이었다. 마음이 몰랐던 자리에,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쿵'하고 떨어지게 만든 작가를 질투하기도 했더랬지. 여전히 지금도 인간과 인간의 단절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믿음을 다룬 이야기에 머물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 <휴먼 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물은 100도에서 끓고, 담배는 해로우며 케네디 대통령은 달라스에서 1963년 11월 22일에 살해되었다. 이런 사실 외에 다른 것들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은행이 망한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을 설득하여 계좌를 닫게 만든다면 결국 은행은 망할 것이다.'


  어떤 걱정은 길 잃은 믿음에서 파생된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낙관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다만, 사실 관계에 믿음이라는 수를 둬야 한다면 이왕이면 '선'의 손을 드는 것. 몸이 자연스레 사랑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 믿음의 물꼬를 어디로 틀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 시기였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다음에 일어날 사실을 만들기도 하니까.


  다시 돌아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안정원에게 감동한 까닭은 같은 맥락이다. 연우엄마가 어떤 나쁜 의도나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잊지 못해 이야기를 나누러 온 것이라는 그 믿음. 그것을 믿어주는 믿음.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이런 솜이불 같은 사랑 앞에서 경탄하고 만다.


  내 안에 말 못 할 이야기가 쌓이는 것은 어쩌면, 아주 조금은 사람을, 나 아닌 누군가를 헤아려 볼 씨앗이 심기는 중 아닐까. 발화하고 못하고는 나의 몫이겠지. 언제고 사실과 사실 사이 다리를 놓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 믿음은 사랑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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