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기에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바람에 흔들려 춤추는 나무
강아지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번지는 구름
두둑 두둑 떨어지는 여름비
태양의 빛을 머금고 있는 파도
간혹 길을 걷다 멈춰서는 한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설명 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심 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
삶에 대한 가치관이 서서히 바뀌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무엇이 달라진걸까?
나무로 가득한 저 산과 아침마다 뜨는 태양이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은 아닐텐데.
어리숙한 나의 삶은 걱정과 고민으로 삶이 뒤덮여 있었다.
쉼없이 생각에 잠겨있거나, 귀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아놓고 손에서는 폰을 놓지 못했다.
여행을 가도 시간표에 맞춰 이동하며 여기 찍고 다음, 저기 찍고 다음.
가만히, 그 순간을 즐기는 법을 몰랐다.
고민과 사색도 좋지만,
생각을 잠시 접어두는 쉼도 중요하다.
소파에 지친 몸을 뉘이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에 갇히지 않고, ‘지금’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야말로 ‘느림’의 시작이다.
"아, 그때 그렇게 말할걸..."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친구한테 하지 말아야 했던 말, 내일 볼 면접으로 잠에 들지 못하며 하는 걱정.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후회와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 차며 옥죄는 고통.
이 경험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바로 현재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우리.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심적인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을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즐긴게 언제였을까?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과거 혹은 미래에 머물러 있고,
그러다보니 ‘지금 이 순간'은 단순히 미래의 특정한 순간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어색하고 어렵다. 우리의 삶이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고, 과거도 결국 지나간 현재의 집합이며, 미래도 '지금 이 순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망각하고 간과한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빠름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다.
오늘 주문한 물품이 내일 아침이면 문앞에 도착하고,
언제 어디서나 음식은 주문한지 30분 내외로 배달이 온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빠르게 넘겨지는 스크린 사이로 흘러나오는 꿀 같은 도파민을 찾아 우리는 현실을 도피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해야할 일과 유튜브 시청을 두고 고민한 적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쉽고 자극적인 것에 너무나 강하게 이끌린다. 그렇게 우린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매료되어 일상 속 보석들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점차 삶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해야할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지 않은지 잠시 멈춰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느리기에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느리기에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느림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비교를 통한 삶이 아닌, 사람마다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는 지혜도 준다.
무엇보다 수다스러운 내면의 목소리를 잠시 내려두고, 내몸에서 느껴지는 생명, 듣지 못했던 주변의 소리, 아름다운 하늘, 다채로운 자연과 도시의 향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즉, ‘지금’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느림이지 않나 싶다.
바쁘고 정신 없는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목표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나갈 여유가 생길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불안과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