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데이 소셜 스터디 Oct 14. 2020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드는 공간

슬로우 라이프스타일을 공간 속에서 실천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느림을 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정한 후, 스스로 계속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정녕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고,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내 의지와 달리 이를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게을러지는 나의 모습이 종종 보이며, 일어나자마자 폰을 확인하기도 하고, 잠에 들기 전까지 폰을 쥐고 있기도 한다. 일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집중을 못할 때가 많다.


SSS 패밀리와 함께 지내는 사무실이 아니라 분당 본가에서 주말을 보내면 느림을 실천하는 것의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다짐을 하기 전 나의 모습들이 자연스레 습관처럼 나오곤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희망하는 삶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분당에서 작업할 일이 생기면 바로 짐을 싸고 집 앞 카페로 발걸음을 돌린다. 내 방에서는 도저히 집중 못하는 내 자신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젠 방에서 뭘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처음 공간을 구상할 때부터 '작업을 하는 내 모습'이 구성 요소가 아니였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 집으로 이사오고 방을 꾸밀 때 쉼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팬데믹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작업 공간을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다. 오롯이 쉬는 공간으로만 기능하도록 구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이용했다.


지금의 SSS 패밀리와 일을 시작하면서 부암동 사옥으로 나도 이사오게 되었다. 팀이 다같이 살면서 일을 하는 이 곳은 북악산 입구부터 20분 가량 걸리는 경사길을 걸어와야 한다.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라벤더가 양옆으로 펼쳐져있고, 좁은 입구 통로 끝에는 넓은 마당이 기다리고 있다. 정면에는 감나무가 그리고 뒤에는 백련나무가 우두커니 서있다.


집 앞 마당 넓게 펼쳐진 잔디와 푸른 하늘을 보거나, 마루 창문을 열어 산바람을 만끽하기도 한다. 거실에는 책상을 배치하여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침에 기상하면 창문 밖 테라스로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구상하기도 한다.



숲 속의 집.


편안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공간에서 집중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어떤 곳보다 작업에 집중하기 좋다. 답답함에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다. 잠시나마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쬐다보면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편안하고 여유로움'이란 똑같은 테마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분당과 부암동을 다르게 만든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공간의 주활용 목적의 차이일 것이다. 


부암동에서도 물론 숙식을 해결하고 쉬는 날도 있지만, 공간 구조와 가구 배치가 '일하는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통 집이라면 거실로 사용될 공간이 사무실 책상과 회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고,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작은 방도 책상과 프린터 등 업무 공간에서 사용되는 가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간의 분리 역시 확실하다. 모든 것이 좌식이고, 침대가 내 방의 주를 이루는 본집과 달리 부암동은 거실 작업공간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 간 분리가 확실하다. 어쩌면 이는 인테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공간의 활용도에 따른 분리가 없다면 온전한 집중은 정말 쉽지 않다. 어쩌면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가득한 서울 시내에서 카공족(카페에서 장시간 머무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양산되는 이유도 이런 공간의 분리 문제에 기인하지 않을까?


공간을 이루는 색감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분당은 벽을 감싸는 벽지부터 가구의 색 모두 웜톤으로 이루어져 있다. 침대를 받쳐주는 원목과 그 옆의 벽으로 쭉 이어지는 좌식 테이블도 진한 원목이다. 또한, 방의 조명으로도 따뜻한 노란빛을 사용하여 공간을 채우고 있다.


부암동의 색은 이와 꽤나 다르다. 흰색 벽지로 둘러쌓여 있고, 대부분의 가구와 소품들이 흰색을 이루어져 있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집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흰색 인테리어가 주는 깔끔함이 공존한다. 이 집의 따뜻한 분위기는 창문 밖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림자와 그 사이를 뚫고 마루 창문을 두드리는 쨍한 햇빛이 담당한다. 또, 실내 곳곳은 화초가 공기 정화 및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배치되어 있다. 짙은 녹색은 눈의 피로를 해소시켜주고, 마음의 평안함을 찾게해준다. 이는 쿨톤을 중화시켜 준다. 내가 작업하는 책상 역시 다양한 화초가 자리하고, 파란 빛을 띄는 유리로 덮여있어서 작업에 몰두하기 좋은 물리적 환경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크기와 높이 차이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높은 천고를 가진 공간에 들어가면 쾌적함과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천장이 높을수록 인간은 자유로운 느낌을 받으며, 이에 따라 창의력도 샘솟는다고 한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사고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작업을 주로 하는 난 부암동의 높은 천고가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줌을 체감한다.


공간의 구조와 가구 배치가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반면, 공간 속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분위기는 정서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부암동에서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고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작업 환경은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치 모두가 집중하며 공부에 몰두하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집중이 더 잘되는 심리적 효과와 같다. '어떤 일을 하고 싶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주위 사람들은 나의 정서적 환경을 조성한다.


이렇게 본가에서 작업 집중이 힘든 내가 부암동만 오면 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 행동 그리고 기분이 환경에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알 수 있다.



나를 바꾸기 위해 환경을 바꿔볼까?


나를 바꾸는 일은 정말 힘들다.


물론 환경을 바꾸는 일도 일정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동반되면 좀 더 빠르게 내가 원하는 모습에 성큼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전설적인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We shape the things we build. Thereafter, they shape us.


우리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우리를 만든다는 말.


현재에 집중하는 삶, 

여유롭고 평온한 삶, 

그리고 느린 삶을 살고자 하는 나는 그런 삶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흔히 '슬로우 라이프스타일'이 대중적으로 비춰지는 이미지 소비에 멈추지 않고, 실제로 느린 삶을 살아가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한다. 내가 집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공간이면서도 내가 아무 생각없이 쉴수도 있는 공간.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반영되는 공간.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줄 수 있는 공간.

이전 04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