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리석은 신과 인간, 진은영 <일곱 단어로 된 사전>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후기

by 밸런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___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소리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서 살지 않는다


세상에 처음 날 때 사람은 알몸이었다.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된 아기는, 울 수밖에 없다. 처음 겪어보는 바람, 온도, 감촉이 살결에 닿는다.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운다. 나를 뛰어넘는 고통을 표현할 길 없음으로. 아기는 운다. 시는 그런 아기의 언어.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모든 것을 처음 겪는 아기의 웅얼거림 같다. 화자의 사전에 일곱 개의 단어 밖에 없는 것은, 화자가 아는 단어, 겪어본 단어가 일곱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봄을 겪고, 슬픔을 겪고, 자본주의를 겪고, 문학을 겪고, 시인의 독백을 하고, 혁명을 겪고, 시를 산다.


화자는 봄을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는다. 화자는 봄을 처음 겪는다. 온전히 겪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야 한다. 갑자기 올라오는 새싹들, 갑자기 올라오는 꽃들, 당신은 이런 것들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처음이라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렇게 "뒷걸음치다" 밟은 것이 "푸른 뱀의 머리"라면 얼마나 놀랐을까?


슬픔은 과도하게 넘치는 것이다. 우리는 일정량의 슬픔에는 적응이 되어있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더 이상 어느 정도의 양을 넘겼을 때 나무토막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그게 슬픔. 화자는 상황 없이 슬픔을 느낀다. 그에게 슬픔의 이유가 없다.


자본주의는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을 혼자 걷는 것. 화자 혼자서 터널을 걸어서 지나가는 것. 끝이 없다. 그래도 계속 걸어야 한다. 자본주의.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문학은 어두운 곳에서 반짝이는 "백열전구". 하지만 "개구리울음". 실체가 없다. 손이 닿지 않는다. 희망 없음의 희망. 혁명은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분명 존재하지만, 너무 투명해서 와닿지 않는 것.


화자에게 고통과 헛된 희망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시인. 시인의 독백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화자.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 시인은 봄을 모르고, 슬픔을 모르고, 자본주의를 모르고, 문학을 모르고, 시인의 독백을 하지 않고, 혁명을 모르고, 시를 살지 않는다.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화자다. 시인은 화자에게 가는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를 몰래 "일부러 뜯어"보는 사람이다. 화자가 시인에게 남긴 말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