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삶의 이분법 속에서
세상은 팔리는 사람(상품)과 사는 사람(구매자)으로 구성된다. 자기 계발은, 자신을 매우 비싼 가격에 팔아서, 구매자가 되는 것. 네가 구매자가 되어도, 이미 넌 상품이다. 네 영혼에 값을 붙여서 계속해서 팔아야 한다. 건강한 영혼은 더 비싸다. 정시에 일어나서, 정시에 잠자는 삶, 지각하지 않기, 모범적으로 살기.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런 건 세상에 없다. 상품은 팔릴 때만 가치가 있다. 상품이 구매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상품이 자의식을 가지고, 구매자를 고른다면 그건 이미 상품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결정은, 구매자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다. 왜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야 하는가? 잘 팔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착취한다. 엄격하게 통제된 삶. 우리는 뭐라도 하나 실수하면 완벽한 상품에 상처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지? 수많은 책에서 권하는 것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격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은 패배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난 패배자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하고, 유교는 모든 사람은 실천과 공부를 통해서 선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계발은 너는 “잘못되었다(죄인)”에서 시작해, 실천과 공부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두 종교의 핵심을 이어받아서 만든 사이비 종교 같다. 그들의 종교에는 신이 없지만, 신이 있는 어떤 종교보다 힘이 세다.
종교에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 그러니까 신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은, 자신을 팔았을 때밖에 없다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의 교리에는 “나” 밖에 없다. “나”만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나”의 모델은 완벽한 존재다. 엄격하게 욕구와 감정을 통제하는 인간.
난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믿는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욕구와 감정의 통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온전히 삶을 살아낸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다움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술이 인간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삶의 아름다움이다. 우리 삶의 추악함마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예술은 말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문장이 없는 것처럼. 당신이 예술을 살기 위해서,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욕구, 감정에 솔직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삶은 예술과 세속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세상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방법은 예술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로 살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상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