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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내는 글쓰기, 위험한 글쓰기

글쓰는 이유

by 밸런스

나는 옛날 사람이다. 인기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믿지 않는다. 글이 바로 이해가 간다? 애매하다. 작가는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글은 몸으로 쓰는 거다. 나에게서 밖으로, 밖에서 더 밖으로. 그렇게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부족하다.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독자다. 독자 또한 글을 읽음으로써 글에 다가가는 것일 테니까. 이것을 반대로 하는 글이 쉽게 이해되는 글이다. 밖에서 얘기하는 나가 나인 양 쓰는 글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들을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쓰는 글들. 나는 이런 글들보다는 차라리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는 글이 더 나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글들은 밖으로 뻗어 나오지 못했을지언정 외부와 타협하지 않았다.


나는 글의 이데아를 생각한다. 에고라는 단단한 중심을 가진,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정신. 팬과 종이에 의지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글쓰기의 경지란 이런 것이다. 화려한 문장보다 정확한 표현에, 대중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말은 쉽지만, 참 쉽지 않다. 글은 독자를 고려한다. 내가 읽기 위해 쓴 글이라고 해도, 나라는 미래의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래의 나는 내 글을 읽으며 뭐라고 할까? 얼굴이 빨개져서는 가져다 버리지 않을까? 독자란 잔인하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고, 글을 버린다.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


이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면이 있다. 우리는 이 경계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두려워한다. 나 혼자만이 독백이 아닐까,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타협한다. 안전하게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장치들을 꺼내온다. 시인은 시적인 것을 가져오고, 소설가는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시적인 것은 시가 아니고, 다 아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타협은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시적인 것을 내 시상이라 믿고, 다 아는 이야기를 내 이야기라고 믿는 것이다. 두려운 나머지 믿어버리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계속되면 나 자신으로서의 “나”를 망각하고, 대중 속의 “나”만 남게 되는 것일 테다.


우리에겐 돌아갈 집이 필요하다. 글은 모험이고, 모험은 집에 돌아오며 끝이 난다.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모험은 위험한 것이다. 계속되는 위험에 노출되거나 유혹에 굴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은 몸으로 밀고 나가되, 돌아갈 곳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나 자신을 대중으로부터, 떨어진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소설가 “안톤 체호프”와 “한강”을 호명할까 한다.

체호프는 끝까지 가는 작가다. 그의 단편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행동이나 성격 때문에, 파국을 맞이한다. 이때의 파국은 단순히 인물들 간의 갈등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누구나 상상하지만, 누구도 실현하지 못하는 억눌린 욕망을 표출하는 것, 그게 체호프 단편의 특징이다. 나는 이것이 투박하지만, 잘 먹히는 글의 전형이라고 느낀다. 나의 무의식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가 독자의 무의식을 깨운다. 독자는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무언가 나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야기에 다가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욕망이고, 내 무의식이지만, 글을 씀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것이 꼭 작가의 욕망이나 무의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회의 무의식이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5.18과 4.3을 다룬다. 두 사건은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현재 세계가 가진 무의식에 맞닿아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안톤 체호프”나 “한강”처럼 독자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글이다. 우리에겐 이런 마음이 있어,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아픔이 있어. 라고 말하는 글. 그런 글을 쓴다면 좋을 텐데. 나의 글은 아직 한참 멀었다. 아직도 나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을 쓴다. 밖으로 나가기 무서워하는 아이처럼 고독을 꼭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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