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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 Dec 30. 2021

끊어진 그물을 고치는 법

연희(N)


부둣가에서 그물 고치는 어부들을 봤어. 심하게 엉킨 그물이었는데 어부들 손길은 거침이 없더라.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정확히 아는 손길이었지.  어부가 끊어진 자리를 표시해서 넘기면 다른 어부 손질 몇 번으로 그 구멍 말끔히 막는데, 그게 하도 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지켜봤어.


 번째 어부는 무심한 듯 신중한 눈으로 끊어진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매듭들을 찾아 새 실을 걸.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엄숙하게 예배를 올리는 성직자들처럼 두 어 한참 동안 그물을 손질했. 이 밝아올 쯤 그물은 새것이 되었어.


운명의 신들이 끈을 자르는 정반대 편. 게 여기였나봐. 바로 여기서 어부들이 어진 선 시 이나가고 있던 거야.


잘 기억해.

그물이 끊어졌을 때는

가장 가까운 매듭부터 찾을 것.


 

패니 브레이트의 '그물수선'




퍼스널 도슨트 제이

세 번째

끊어진 그물을 고치는 법




객은 그림의 음성을 들은 게 틀림 없다.


목소리를 지닌 그림들이, 대화를 건넬 줄 아는 그림들이 있다. 실 모든 그림은 저마다 목소리를 지니고 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역시 그런 그림 중 하나였다. 방랑자의 뒷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서 정복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도망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는데, 객은 분명 둘 중 하나를 만났 그 응답으로 제 에 있던 말을  것이다.


'당신은 죽지 말아요.'


더 이상 그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 그들이 오래전에 들려준 목소리를 간신히 올리거나 들리는 척 기하는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하나?


질투 때문. 재우가 인천의 D빌딩까지 와서 조연석 이사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자가 그림에게서 들었을 말을 들은 이라도 하고 싶었 때문인지 모른다.


집무실 문을 가리키며 들어가라는 신호를  비서는 늦게 자리에서 일어우에게 문을 열어주 했다. 그러나 이사가 그보다 한발 먼저 나와 쪽에서 문을 젖혔다. 서는 머쓱해하며 제자리로 돌아, 조용한 방 안에 연석과 재우만이 남게 되었다. 검은 가죽 의자에 앉으며 연석이 말했다.


"기 들었어요. 이번 전시 재 쪽에서 맡게 되었다고. 이미 결정된 일 관해서 우리가 무슨 얘기를 더 나눌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느리고 부드러운 목소리. 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벨천 밑에 마음만 먹으면 구든 단죄할 수 있는 날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연석은 삼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태도, 오랜만이라던가 잘 지냈느냐는  한마디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재우 역시 그 호흡에 맞춰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작품은 전시용 아니었습니다."


물끄러미. 

그것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공개로 남겨둔 습작에 제목과 설명까지 붙여 제출했더군요. 저는 그게 작가와 관객 모두를 기만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

이것 역시 저 사람에 아무 일도 아니다.


재우는 속이 타기 시작했, 대가 던진 묵의 낚시 바늘에 걸려들 그만 맨 밑에 감춰둔 질문 뱉고 말았다.


"연희 작업실을 떻게 한 겁니까?"


그제야 져나오는 깊은 한숨.


"그게 작업실이었? 나는 두 사람 신혼집인 줄 알았는데. 워낙 집기 마구잡이로 섞여길래."


미간을 찌푸린 이사는 리에서 일어나 유리잔에 물을 랐다. 그가 앉아있던 가죽 의자의 움푹 들어간 주름이 주인의 심중을 전하듯 뜩 일그러져 우를 노려보았다.


 "미안합니다. 아침부터 연희 얘기를 내려니 민해지는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이제 알겠습니다. 재우 씨가 그사람 아닌데... 지금 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서 바로잡아 드려야겠. 그 공간은 연희 소유였습니다. 연희가 떠났으니 제게 권한이 넘어왔고요. 한 달 전 처분했습니다."


다시는 찾지 않을 곳이 영영 기억에 묻기로 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 버리다니...


"그래서 짐 리듯이 희 작품들을 워버린 겁니까?"


" 씨는 로피우스 바우 전시관을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만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그런 식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요, 재우 씨. 나를 무슨 사기죄로 몰아가고 싶은 거라면..."


여전히 일어선 채 재우를 내려다보던 이사가 단숨에 잔을 비우입을 다.


"그렇다면 그쪽은 거의 살인 아닙니까."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논리인지는 알만했다. 그 비행기에 오르라고, 자기는 신경쓰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 더 넓은 무대에 서라고 연희에게 말 것은 재우였다. 하지만 먼저 그를 찾아와 연희를 놓아주라고 협박을 한  누구였던가? 이런 선후관계를 재우가 호소한다면 연석은 이렇게 답할 했다. 애초에 재우가 연희에게 다가서지 않았더면. 애초에 그러지 않았더라면.


동유럽 상공을 지나던 그 날개 달린 기물은 엘브루스의 줄기 위로 추락한  아니다. 그들과 닿아 있던 모든 사람의 가슴 한가운데로, 살과 뼈와 장을 뚫고 떨어진 것이다. 생의 그물 한가운데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만든 것이다.


애초에.

애초에.

애초에.


세 음절짜리 지팡이로 눈먼 사람처럼 매듭의 기원을 더듬고 또 더듬어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속수무책 회복 불가의 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재우가 거 것, 품 것, 지켜내려 노력한 모든 것들 끝 모를 구멍 속으빠져나가버렸다. 가족도. 목표도. 믿음도. 그리고 그림.


" 타세요?"


정신을 차려보니 빌딩 입구. 어긋난 일을 바로잡으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 허무의 냄새를 신속하게 멀찍이 치워놓기 위해, 이사가 불러놓은 택시가 재우의 눈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림의 목소리를 들은 척 한 대가다, 하고.

재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타인을 기만할 때보다 자신을 기만할 때  큰 대가를 치르는 법이었으니까.






대교 하나를 건넜을 뿐이데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들려온다. 갯벌에 고인 해수 냄새가 난다. 문수는 시공업체의 가구들을 강화도의 물류 창고로 옮긴  다시 자유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이브가 바다를 좋아했다 것은 포항을 떠나 상경하기 직전 알게 되었다. 그림을 랑했던 어느 청년이 그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문수는 이브의 눈이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굉장해!'


잔잔한 파도를 응시한 채, 그 파도 일렁이는 털을 지녔던 커다란 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브를 떠나보낸 날. 문수는 바다를 보여주겠다 차를 몰고 서해로 내달렸다. 그러나 보조석에서 점점 미해지는 호흡를 듣고 있자니, 바닷가에 닿기 전 이브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저기 보이는 고수부지로 내려가 작은 부둣가에 개를 앉혀주었다. 


"눈 좀 떠봐. 네가 좋아하는 바다야."


이브는 냄새로 한강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흘러오는 바다 내음도 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렇다면 다를 보여주려던 문수의 마음 느끼지 않았을까.


트럭 인수까지 앞으로 서너시간. 그는 고수부지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샛길을 따라 다. 1월 치고 포근한 날씨였다. 물살에 좌우로 흔들리는 잔교도, 붉은 쇠살대의 둥그런 대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석양빛을 겨내 치 불이 난 것처럼 보이는 무성 잡풀 정도. 시멘트 둑에 등을 기댄 문수는 아련한 모빌처럼 반짝이는 윤슬과 물결 소리가 만들어낸 최면에 지친 의식을 내맡겼다. 곧이어 패딩에 얼굴을 파묻은 그는 까무룩 선잠에 들었다.


엷은 꿈속에서 그는 

어부다.

목수다.

한때 꿈꾸었던 사진가다.

잠시 아버지가 되었다가

아이가 되었다가

또 다른 길목에서

환한 빛을 뿜어내는

이브와 기훈을 마주친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 것처럼

서로 껴안으며 미소 짓고 안부를 묻는다.

함께 걷는다.

함께 비를 맞는다.

함께 깨어난다.


눈을 뜨고 올려다본 칠흑 같은 하늘에서는 꿈 속의 빗발 대신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올겨울 들어 벌써 두 번째 맞는, 예사롭지 않은 눈이었다. 가로등이 길 위에 만든 희미한 징검다리를  따라 겨우 돌아온 문수는 운전석으로 뛰어들며  문을 닫았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가빠진 숨을 한참 가다듬었다. 얼굴을 훔치고 시동을 걸었다. 인수자와 만날 시간이 벌써 코앞이었다. 그가 대로에 진입하기 위해 황급히 경사로에 오른 순간. 


쿵!


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퍼에 부딪쳤다. 문수는 가슴이 철렁해서 조금 전 칠게 닫았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천만다행으로 트럭과 부딪친 것은 무릎 높이쯤 되는 사물이었다.


오토바 인?

자전?

아.

휠체어나.


물건을 갓길로 치우던 문수는 경사로 위쪽으로 길게  휠체어의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그 끝에 멍울진 검은 덩어리 보였다. 버려진 천 더미처럼 보이던 그 덩어리는 이내 쓰러진 사람의 형태로 바뀌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오르는 강변의 안개와 눈발 그의 거친 날숨을 낚아채듯 휩쓸어갔다. 더욱이 눈발은 쓰러진 이의 몸을 묻어버릴 기세, 이 외진 곳에서 벌어진 일을 어버릴 기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가 꼼짝없이 서서 우왕좌왕 하던 순간. 뒤늦게 아온 메아리처럼 바람의 틈새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죽지 말아요.'


이윽고 문수는 자연의 작당을 막아내기로 결심한 듯, 눈 위 뻗은 퀴 자국 한가운데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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