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나무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 삶의 의미와 감사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대하는 나무의 태도를 배운다. 다 썩은 고목에 피는 한줄기의 생명을 바라보면서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고민하게 된다.
22년 전 2001년, 남편은 다니던 대기업에 나와 상의도 없이 사표를 내 던졌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남들의 시선이었다. 지금에야 그 관심이 그립고 정겹다고 느껴지지만 부담스러웠다. 나보다는 남편이 더 그랬다.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지 영어를 더 배운다는 명목으로 어학연수를 생각했다. 우린 서둘러 KOEX에서 열리던 유학, 이민 박람회를 찾았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이민 신청을 했고 대기업 경력, 화공학과 엔지니어가 필요했던 캐나다로 우리의 행선지가 결정이 되었다.
22년씩이나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내 삶의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밴쿠버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도 날마다 한국에 돌아갈 날을 꿈꾼다. 아이들은 한인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캐네디언이다. 그런 아이들과 뼛속깊이 한국인인 남편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그리움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지금 더 한국을 그리워한다. 막상 그곳에서 살 때보다 지금 더 뜨겁게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헤어지니 더 그리워진 사람들이 있다. 나도 잊었던 첫사랑이 생각나는 소녀처럼 서울에 가고 싶다. 내가 한국을 자주 드나들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그리움이 쌓일 수 있었을까?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밤은 길다. 자다가 깨도 또 밤이다. 가장 곤란한 때는 새벽시간이다. 비가 오는 밤, 빗소리를 들으며 눈도 못 뜨고 누군가가 던지는 밧줄을 기다렸다. 그 밧줄은 때로는 스마트폰의 알람이기도 하고, 빗소리, 때로는 눈이 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Happiness의 어원은 Happen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움은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딸이 선물한 몰스킨 노트에 쓴 글이 몇 권이다. 최근에는 딸이 아마존에서 산 서울에 관한 책 2권을 보면서 내가 저자들보다 더 서울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서울을 그냥 그리워하는 것보다 서울에 대해 적기로 했다. 내가 만난 서울, 그리고 만나고 싶은 서울을 기록하니 꽤 많은 분량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직 모르는 서울은 더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내년에 다시 서울을 만나러 갈 것이다.
이제 그만 기지개를 켜자. 봄이 오고 있다. 나에겐 한국이 봄의 기지개다. 봄이고 꽃이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다. 세 딸들을 한나절 맡길 곳도 없는 이 낯선 밴쿠버에서 엄마도 없이 나는 잘 살아냈다. 이젠 나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는 서울이 보고 싶다.
밴쿠버에서의 22년 내 삶은 충분히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태어났고 청년시절을 보냈던 서울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쳐온 서울에서의 내 삶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알게 된다. 나는 서울사람이고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앞으로 캐네디언이면서도 한국인으로도 살아갈 내 세 딸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