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노래

38살의 봄

by Letter B



안녕하세요, 14번째 시간을 조금 일찍 열어볼까 합니다.


겨울의 포문을 알리는 것처럼 얼마 전 첫눈이 내렸어요. 다들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좀 쑥스러움이 많은 편이라 두드러지게 무언가에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눈만큼에는 좀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눈이 내릴 때 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눈은 사람을 불가항력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언젠가부터 첫 눈이 오는 순간을 부러 챙기지 않아도 절로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걷다보니 첫 눈이거나, 어쩌다 밖을 보면 첫 눈이 였다거나 뭐 이런 날이 대다수거든요. 그러다보니 첫 눈이란 걸 신경쓰지 않아도 첫 눈인걸 결국은 알게 되더라고요.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첫 눈이란 것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대설 주의보가 떴어요. 오늘 눈을 뜨고 보니 어김없이 눈이 내리더라고요.

올해 눈을 맞으러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눈이 내리기 20분도 안됐는데 이미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더라고요.

매주 마주하는 익숙한 거리인데도,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채 하얗게 덮인 것을 보면서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이리저리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발자욱을 세기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38살에 맞이하는 봄'


봄을 겨울에 맞이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걸까? 하면서도 그래야 말이 되는 것 같은 한 해를 보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낭만이란 것은 항상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겨울이 내려서야 비로소 봄이라니.


얼마 안 남은 2022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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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별다른 곡 소개 없이 쭉 곡을 늘어놓아 볼까 합니다.

눈이 내리는 포근하고 하얀 정경을 떠올리시면서 함께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some other place - Arcade Fire, Owen Pallett



https://youtu.be/kpsjaf3EIcA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는 곡입니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눈이 차곡이 거리로 내려 앉습니다. 옮기는 발걸음으로 사박이는 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보드라운 눈이에요. 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에 공간이 전하는 아주 미세한 소음들을 몸으로 기억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 예기치 못한 피아노 소리가 어딘가에서 말을 걸어오는 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곧 지나지 않아 언제가 몸으로 기억하는 순간들에 대해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이 곡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 그 장소여야만 하는 그런 곡들이 있잖아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흘러나오거나, 혹은 꼭 그 곡이여야만하는. 꼭 그 장소를 위해 마련된 곡이 아닐지라도 그 때부터 특별해지는 곡인 거죠. 어제 산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음 눈을 맞을 때 우연히 이 곡을 들으면 이 장소, 이 순간이 꼭 떠오르고 말거야하는.


제목도 멋있지 않나요,

'some other place'




We're All leaving - Arcade Fire, Owen Pallett



https://youtu.be/q5qdh2NyBCw




Photograph - Arcade Fire, Owen Pallett





https://youtu.be/iXmo-OWMUaQ


너무 익히 아는 Her OST 명곡입니다.


저는 이 곡을 좀 마음이 혼란스럽고 답답할 때 청해듣게 되는데요,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어떤 때라도 좋은 곡인거 같아 덧붙혀 보았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도 여러가지 갈래가 있잖아요. 그리고 그것조차 딱히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순간들도 만나게 되기 마련인데, 그럴 때 저는 이 곡을 듣게 돼요.


도입부부터 빠르게 진행되는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그 마음이 무엇이라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가끔은 이 곡처럼 그게 꼭 정의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좀 흘러가게 두는 것도 좋더라고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들이 명확한 언어를 갖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계속 가지고 있으면 보기 싫은 실타래갖고, 또 꺼내보며 더 엉켜버려서 애매한 순간들에 이 곡을 청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무겁던 것들이 그대로 괜찮아지는.


그런 곡인 것 같습니다.




Sleepwalker - Arcade Fire, Owen Pallett



https://youtu.be/aOcFN81tFGs


영화 바닐라 스카이를 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전조가 보이는데 도무지 어디인지 모르겠는 거에요. 그러한 순간들을 우리가 예감하게 될 때를 떠올려보면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에요.


이 곡이 저는 그런 곡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짝 뒤틀어주는, 그런 곡으로 여겨지더라고요.


이상한 것은 저희는 모두 그런 순간들에 weird라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기분 좋은 호기심으로 일관한다는 거죠. 일상이 영화와 같은 한 장면으로 변하는 순간은 꼭 아름답거나, 추억이 서린 가삿말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의외의 리듬들이 그러한 힘을 갖고 있는거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늘 선곡한 곡들이 영화 Her OST거든요.

제가 나름 아끼는 플레이 리스트인데 이런 순간들은 함께 공유해야하지 않나 싶어 부랴 부랴

컴퓨터를 켰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좋아하는 영화의 OST도 꼭 함께 찾아 들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영화OST로 선곡된 곡들은 대게 영상의 상황에 맞게 선곡된 곡들이 많다보니

곡 자체가 두드러지는 곡은 많지 않은데, 상황과 분위기를 묘하게 지배하는 곡들이 많아요.

마치 플레이가 되어있는지도 몰랐는데 상황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는 거죠.


저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일상을 버티는 힘이 아닐까 싶거든요.


영화 OST의 경우 영화에 소개된 곡들 외에도 함께 앨범에 실린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우연히 만나게 되면 의외의 순간들을 만나실 수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2022년이 끝나가고 있어요.

얼마남지 않았지만 모두가 즐거운 기억으로 마무리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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