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이 켜졌다.
그것은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후의 일이었다.
나는 정해진 비상시 행동 요령을 따라 차단기를 확인 후 휴대전화를 든다.
어둠 사이로 울리는 신호음이 적막을 부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딸깍 -
수화기를 내려 놓고는 모든 불빛이 소등된 거실 너머의 전경을 바라본다.
제멋대로 빛을 뿜어내던 구식의 성냥갑같던 건물은 이제야 달 아래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적막을 담아낸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이겠지.
거드렁을 피우던 사람들마저 잠재운 듯 빛이 없는 단지의 고요는 생각보다 많은 동결을 일구어 냈다.
전기를 따라 스위치는 맥없이 고개를 떨군다.
이제 막 수화기를 내려놓으난는 그 편이 안심이 됐다.
빛은 금새 똬리를 틀었고, 공간을 이내 제 것으로 지배했다.
무드등 -
나는 순간 그것을 그렇게 부를 뻔하였다.
'관리소에서 왔습니다’
이렇다할 공구함도 없이 기사는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나는 그렇다할 초 하나 구비해두지 못한 것을 냉큼 고하고는 제공되는 전력이 몇 시간 유지되는지,
혹시 익일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등 기사를 향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 과장된 절실함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공구함은요?'
손에 든 음료를 들이키고는 기사는 어깨를 으쓱 내보였다. '비상등은 비상시에 자동으로 켜집니다. 아가씨도 분명 알고 있지요?' 그가 연이어 말했다. '전력은 충분하니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나는 남자의 손에 든 컵을 건네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잠시 둘 사이로 미묘한 적막이 흘렀다.
적막을 가르며 벽면으로 넓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초는 없는 건가요?'
기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누구보다 정중히 현관문을 닫고 퇴장했다.
그래요, 저는 센스가 없습니다.
그녀는 반짝하고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