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허풍이었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뻔한 이야기가 또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소녀는 지루했고, 소년은 영리했다.
늘 서있던 자리가 조금은 버거워졌다.
소녀는 영리했고, 소년은 지루했다.
서툰 걸음은 항상 같은 곡선을 그린다.
이 녀석이 좋은가.
수줍음이 베어나는 목소리만큼 마음을 따라가보았다.
딱히 이야기의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마음을 따라가 보았다.
멀뚱이 달려간 자리에는 수줍은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아뿔싸,
허풍으로 웃어넘길 수 없다고 다짐했다.
수줍음은 어느새 걸음으로 옮겨진다.
지루한 이야기가 이제 막 닻을 올리고 아주 긴 항로를 따라 몸을 싣는다.
겁이 많은 우리는 겁이 많은 소녀의 주어도 서술어도 없는 세레나데에 의지하여
서로의 몫을 챙긴다.
뻔한 이야기가 초라하게 스러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채워둔 줄이 누구 하나 놓치지 않도록
서로를 옭아매고 죄여가도 약속한 듯 다시금 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엉켜버린 실타래를 비밀스럽게 당겨본다.
따라오는 죄의식이 내 것이 아닌 양 먼발치에 두고는 뻔한 이야기가 촌스럽지 않게 자리를 잡도록 놓는다.
슬슬 이야기가 멈춰 서도록 시작해 볼까.
방향을 잃어버린 선상은 누구 하나 닻을 당기지 않았고
이내 잠식할 것 같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끝난 줄 모르는 세레나데는
퇴장한 발걸음을 다시금 무대 위로 올려놓는다.
아 - 아 -
가엾은 세레나데.
세차게 흔들리는 뒤섞인 마음들을 뒤로하고, 이 길고 지루한 항로를 벗어나려고 한다.
누구도 당기지 않는 닻을 힘껏 당기며 이야기의 끝을 따라 깊숙이 숨겨두었던 마음으로 달려가 본다.
나 조차도 펼쳐보지 않았던 은밀하고도 단정한 침식의 세계.
조금 야윈 얼굴과 조금 다른 시차와
오랜 관계로부터 오는 애석해져버린 농담들.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질문들이 영영 입가를 맴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주어도 서술어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야기의 주인을 잃은 것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