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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정분실 13화

하등한 언어 ​

by Letter B






전등이 켜진다고 시야가 밝지 않다.

전구를 갈아 끼우기 위해 동네 철물점으로 향한다.

‘한빛’ 철물점.


철물점의 이름이 꼭 그랬다.

색이 좀 노란 걸로 부탁합니다. 요즘 눈이 침침해서요.


오는 길을 비틀어 커피를 손에 든다.

검은 물을 큰 컵으로 가득 채워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한 손으로는 새로 산 전구가 들려 있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라다나.


커피를 파는 곳의 이름이다.

사람들은 근사하다고 표현했다.

검은 물을 채우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가게 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커피 맛이 쓰다고 화답했다.


살아있다는 건 다름을 채우는 일이라고 배웠다.

지불한 것은 갈증의 값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하등한 언어이지 않습니까?


갓을 벗겨내고는 새로 사온 전구를 갈아 끼운다.

전등이 켜진다고 시야가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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