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
나는 죄를 고하기라도 하듯 두 눈을 감고 바닥으로 가만히 몸을 뉘인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숨을 죽인다.
제 몸을 포장할 안식 따위는 없다.
침식된 의식은 고요를 탐하지 않는다.
실오라기도 찾을 수 없는 자아는 더 이상 탐구하지 않는다.
그림자 춤을 기억한다.
큰 몸짓을 기억한다.
벽면 가득 꿈틀거리는 일렁임을 기억한다.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감각은 왜곡됐다.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무지다.
나는 이런저런 과학적 근거와 삶의 갈무리를 훑다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지기 일수다.
지나친 낭비다.
소비되어진 삶을 돌아본다.
지나친 낭비다.
득인가 실인가.
참인가 허인가.
나는 금세 까마득해지는 두뇌를 나무라지 않는다.
삶은 굴러간다.
사유를 따지지 않는 것은 듬직한 개와 같다.
나는 이 상태로는 영영 의미 없는 일들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성급히 휘갈겨낸 시간들을 무덤덤히 응시한다.
여기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만한 문장을 나열한다.
'환영'이라는 단어는 감각의 왜곡의 한 종류로서 일컬어진다. 자극이 없이 왜곡이 나타나는 현상인 '환각'(Hallucination)과는 다르게, 환영은 실제로 일어난 감각의 잘못된 해석에서 이해된다.
어딘가 잘못됐다.
창 밖으로 드문드문 그림자의 일부가 현실인양 움직인다.
초침이 나지막이 흐른다.
온전한 자유란 없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그 긴 밤의 언약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이렇다 할 동조를 내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심코 인간의 무의식이 탐닉하는 것들을 열거하다가는 끝내 감탄하고야 만다.
나는 도저히 틈이라고 찾을 수 없는 그 암막 같은 시간들을 좋아합니다.
한 바탕 지나가고 나면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