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필라테스 센터에서는 한 회원의 막내아들이 과학고에 합격했다며 축하의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켜보던 아이였기에, 내 아이 일처럼 기쁘고 대견했다.
센터 원장님은 예전에 자신이 건넸던 네잎클로버가 효험이 좋았나 보다라며 웃어넘겼고,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네잎클로버가 내 머릿속 한편을 떠나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아무리 찾아도 네잎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친구들은 너무도 쉽게 찾아냈다.
“마음이 나쁜 사람 눈엔 안 보인다”라며 놀리던 짓궂은 친구 녀석의 말에 화가 나 그 뒤를 쫓던 기억도 난다. 결국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린 마음에 두 번 다시 네잎클로버 같은 건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성인이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서도 네잎클로버는 내 눈에 한번도 띄지 않았다. 캠핑을 갔을 때 옆 텐트 가족이 지퍼백 가득 네잎클로버를 모아놓은 걸 보고,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자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우리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나는 괜히 억울했다.
‘그 흔한 클로버가 왜 내 눈에만 안 보일까.’ 어린 시절 들었던 말이 저주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무심코 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 풀숲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살랑이는 클로버들이 '나를 찾아 봐'라며 유혹하듯 눈에 들어왔다. 로또를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내가 남들 1등 당첨 소식에는 부러움을 느끼곤 했던 것처럼, 노력을 들이지 않은 채 행운을 바라는 마음부터 돌아보게 되었다.
행운 역시 찾으려는 수고가 있어야 다가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문득 ‘찾아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어느새 나는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어딘가 허무한 마음이 올라와도 금세 발견할 것만 같아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었다. 입시를 치르고 있는 딸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클로버 찾기에 집중했다.
시간이 훌쩍 흐르고도 네 잎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느 순간 천사 링, 여우 모양, 미키마우스 모양, 다섯 잎 등 다양한 모양의 클로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아이가 된 듯 풀숲 속 작은 발견들에 빠져 한참 시간을 보냈다. 나이 오십에 혼자서 클로버 방석위에 앉아 풀하고 잘 놀았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어릴 적 좋아하던 파랑새 동화가 떠올랐다. 남매가 꿈속에서 찾아다닌 파랑새가 자신들이 기르던 비둘기였다는 걸 깨닫는 내용으로 멀리서 찾던 행복이 결국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야기.
행운 역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마음조차 오래전부터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행운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나의 시선이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칭찬할 수 있도록, 혹은 비난할 수 있도록 정해진 인간의 삶은 없습니다.
행운을 가진 자건 불운한 자건 간에 언제든지 운이 곧추서게 하기도 하고 운이 쓰러뜨리기도 하니까요.’
-오이디푸스왕 중에서...-
운을 서게도 쓰러뜨리게도 하는 것, 발견하기도 흘려보내기도 하는 것, 모든 것은 내 의지와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었다. 나는 오늘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 지척에 널려있는 '행운이란 마음'을 발견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