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무 시루를 연상케 했던 완행버스를 더는 안타도 되는 봄방학이 찾아왔다. 2월 말의 날씨는 여전히 춥지만 그래도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춥게만 느껴지지 않는 그나마 봄이 온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강물도 가운데 부분이 점점 녹아 흐르고 있었고, 계곡에도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나기 시작하는 웬지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나의 절친 원이는 시냇물을 건너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집에 산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리가 없어서 원이네 집에 놀러 가려면 큰길까지 내려와서 원이네 집으로 다시 올라가야 해서 다니기에 불편했다. 그러나 겨울이면 시냇물이 얼어붙어서 얼음 위로 건너 다녔다.
봄방학이 되면서 시냇물에 얼음도 약해져서 건너기 힘들어졌다. 얼음이 녹자 심심하면 타고 놀았던 썰매도 탈 수 없고, 딱히 할 놀이가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라도 많이 모이면 편을 갈라 야구라도 할 텐데 그날따라 동네에는 또래 아이들이 안보였다. 어쩔 수 없이 원이네 집에 가서 뒹굴거리다 낚시를 할 수 있는지 강가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오래전에 다리가 있었는데 장마에 다리가 떠내려가 버리고 다릿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이다. 새로운 다리는 100m쯤 위쪽에 놓였고, 기존에 다리가 있던 자리는 우리들 놀이터가 되다시피 했다. 여름이면 수영장이 되었고,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며, 생각보다 깊은 물로 물고기들이 많아 낚시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또한 저녁이 되면 다슬기가 많이 있어 다슬기를 잡는 장소도 되었다. 강 가운데는 물살이 좀 세긴 했지만 가장자리 쪽 다릿발 사이는 잔잔한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환상적인 그런 장소였다. 또한 겨울에는 얼음이 가장 먼저 얼고 가장 늦게 녹기도 했다.
원이와 그곳에 도착하니 강물은 가장자리를 제외하고는 이미 다 녹아 있었고, 다릿발 사이에 호수처럼 잔잔한 부분에는 두꺼운 얼음이 큼지막하게 얼어 아직 녹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원이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눈빛 만으로도 뭔가 통하는 게 있었다. 둘은 이미 얼음 위로 올라가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얼음을, 원이는 도끼로 깨고, 나는 돌을 내려쳐서 깼다. 20여분 동안 작업을 하자 얼음이 온전히 물 위로 떴다. 지름 4미터 정도의 커다란 타원형의 얼음배가 완성된 것이다.
원이는 혹시 모른다며 주변에서 긴 장대를 두 개 구해왔다. 둘은 다릿발 사이에서 얼음배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얼음배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만 밀려다녔다. 혹시나 싶어 우리 둘 다 얼음 위에서 "쿵 쿵" 발을 굴러 깨지지 않는지 확인도 했다. 가장자리로 가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튼튼하고 커다란 얼음은 정말로 배를 저어 가는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소향아, 여기 좁아서 안 되겠다. 저쪽 강 가장자리로 가면 얕으니까 거기서 탈래?"
"그래. 좁은 데서 왔다 갔다 하니까 재미없기는 하다."
"원아, 이쪽에 와서 같이 밀어 그래야 빨리 빠져나갈 거야."
얼음배가 무척 컸기 때문에 나는 원이를 불러 둘이 힘을 합쳐 얼음을 강 쪽으로 밀어냈다. 두세 번 밀자 얼음은 강 쪽으로 밀려가면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 원이가 마지막으로 장대를 한 번 더 세계 밀자 얼음배는 가속도가 붙으며 강물의 중심부를 향해 쭈욱 밀려나가는 것이었다. 중심부는 강물이 많이 깊어서 바닥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아, 그만 밀어. 너무 깊은 데로 간다."
"어~~~ 엇어~!!!!"
"빨리 가장자리로 밀자"
"아~~!! 안된다. 너무 깊어."
예상대로 얼음배는 이미 깊은 곳까지 들어와 버렸다. 나는 어떻게든 가장자리로 밀어 보려고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장대가 닫는지를 살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얇은 얼음의 끝쪽 가까이에 다다라 있었다. 그 순간 뭔가 땅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팔을 벌렸으나 이미 금이 가버린 얼음은 갈라지기를 멈추지 못했다. 나는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빠지는 순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은 차갑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순식간에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저 아무 느끼도 없이 깊숙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내 몸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보니 에메랄드 빛 초록의 물결이 찰랑대고 있었고, 그 주위에 깨진 얼음들이 둥둥 떠 있어 분위기가 이상했다. 얼음 조각들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파랗게 보였다. 원이는 아직도 내가 물에 빠진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나를 찾느라 안 보이는 것인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내 몸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은 땅에 닿지가 않았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물에서는 허둥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애써 여유를 찾으며 침착하게 움직였다.
평소 잘 알던 강이었고, 여름이면 수영으로 강을 건너 다닐 정도로 수영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물에서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이었을 것이다. 빠지는 순간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머금고 가라앉기가 어느 정도 멈출 때까지 기다리며 물속에서 눈을 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으면서 봤던 얼음배가 내 머리 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물속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 강의 가장자리로 나왔다. 그제야 원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쫓아왔다.
"소향아, 어떻게 된 거야?"
"으~드~드~드~득~"
뭐라고 말하려는데 추위 때문에 떨려서 말소리는 안 나오고 이만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물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추운 줄 몰랐는데 밖으로 나오자 미친 듯이 추웠다. 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옷에 성에가 끼는 것처럼 얼기 시작해서 구겨진 모양 그대로 굳어지고 있었다. 원이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나를 덮어줬다. 그러나 이미 얼기 시작한 내 옷은 그런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뛰었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빨리 뛴다고 뛰었는데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까지는 직선거리로 3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다. 정신없이 집에 돌아온 나는 젖은 옷을 벗자마자 아랫목에 깔려있는 이블 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몸을 녹여야겠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이블 속에 최대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렸다. 뒤따라 들어온 원이가 수건을 찾아 내 젖은 머리를 말려 줬다. 괜찮냐며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원이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완전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웃는 모습을 보자 원이도 한시름 놓았는지 따라 웃었다. 원이는 내가 빠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갑자기 내가 안 보여서 당황했는데 물속에서 까만 머리가 쑤욱 솟아오르는 바람에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물에 빠진 순간을 이야기하는 사이 몸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얼음배를 만들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했기에 얼음배를 만들어 타고 놀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 해 봄방학은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우리 둘만의 기억 속으로 저장이 되고 있었다.